한국 침대 업계의 개척자로 불리는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사진)이 지난 26일 밤 11시쯤 별세했다.

1930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 회장은 국내 침대 산업을 이끌었던 선구자적 인물이다. 미군 야전에서 침대를 처음 접하고 침대 사업을 추진하며 1963년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했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침대를 개발해왔다. 현재 에이스침대는 시장 점유율, 고객 만족도 등에서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에이스침대는 27일 안 회장의 부음을 알렸고 머니에스는 '침대의 역사'인 고인을 오늘의 화제 인물로 선정했다.

안 회장이 에이스침대를 설립한 초기에는 국내에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기다. 국내에 변변한 침대 스프링 제조 기술은 물론 기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스프링 침대를 제조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스프링부터 프레임까지 모두 개발해 제조해야 했다.


안 회장은 처음 스프링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스프링 모양으로 깎고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강선을 감아 보기를 수없이 반복한 후에야 1년여 만에 스프링을 찍어낼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 이는 한국 1호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기기이다.

침대 프레임에서도 혁신을 이뤄냈다. 이 시기에는 모든 목재와 무늬목 접착은 아교로, 칠은 나무 송진을 변형한 와니스로 여러 번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안 회장은 그 당시 페인트 기술부 직원과 함께 도막이 강하고 경제적인 도료 '아미노알키드'를 개발해냈다. 이 도료는 훗날 우레탄 도료가 개발될 때까지 침대 프레임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안 회장은 1992년 침대 기술의 독립화, 침대 기술의 한국화를 목표로 업계 최초로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시기 에이스침대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력을 토대로 수년간 미국의 유명 브랜드와 기술제휴를 맺고 선진기술을 흡수했다.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는 미국, 일본,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첨단의 시험 설비들을 연구하여 탄생한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로 2006년에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국내 침대업계 유일 국제 공인 시험 기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에이스침대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안 회장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9년부터 25년 동안 설과 추석 명절마다 지역 사회에 백미를 기부해왔다.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해 15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역 사회와 소외계층을 위해 꾸준한 관심과 도움을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