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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한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조지아주를 무대로 사랑과 전쟁, 생존을 위한 투쟁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종종 아무 데나 펼쳐서 읽곤 하는데 결코 질리지 않는다. 특히 소설 초반부에서 스칼렛이 애슐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거절당하자 욕을 퍼붓고 뺨을 때리는 장면. 그 시절 남부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무도회를 맘껏 즐기기 위해 도중에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었다. 긴 축제를 위한 중간 휴식 시간, 이른바 '인터미션'(intermission)이었던 셈이다.
스칼렛은 이 시간에 잠을 자는 대신 애슐리에게 마음을 전할 전략을 세운다. "멜라니와 결혼하기로 돼 있다"는 단호한 거절에 절망하고 계획은 무위에 그쳤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면 분명 결정적 순간이었다. 훗날 남편이 될 레트에게 자신을 제대로 어필한 첫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우연히 스칼렛의 고백을 엿듣게 된 레트는 그녀의 대범한 정열에 매력을 느낀다. 그때부터 레트는 평생 스칼렛을 사랑한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아는 스칼렛에게 반한 나는 이 '낮잠 시간' 대목이 언제나 좋다.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만은 아니며, 의지만 있다면 일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고, 이후엔 또 새로운 전개가 펼쳐질 거라는 믿음을 주는 시간. 스칼렛에겐 사실상 '전략적 인터미션'이었다.
십수 년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퇴사한 까닭에 전보다는 자유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좋아하는 문화생활에 쏟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늘어났다. 최근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1부와 2부 공연 사이 15분의 인터미션이 있었고, 우리는 콘서트홀 로비로 나와 막간의 수다를 떨었다.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을 관뒀음을 아는 지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평범한 질문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꽤나 시적인 답을 내놓고 말았다. "음, 요즘 전 마치 삶의 인터미션에 있는 기분이에요." 정말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본심이 툭 튀어나왔다. 막과 막 사이, 일의 방향을 제대로 바꾸기 위해 새 전략에 골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즐거움도 있지만 긴장감도 뒤따른다.
새 길을 걷고자 잠시 브레이크를 건 인터미션 기간에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무대 위 공연이 중단될지라도 배우가 그저 쉬지만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잠시 객석을 잊을 뿐,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어쩌면 더욱 치열하다. 보통 15분~20분 정도 되는 인터미션은 공연 전체 러닝타임에 포함된다. 인터미션도 공연의 일부인 것이다. '쉼'이나 '중단'은 삶이 계속되는 한 궁극적으로 또 다른 전진을 위한 방편이다. 인생의 주요 길목에서라면 '전략적 인터미션'을 방패 삼아 더 멋진 전개를 펼칠 수 있기를!
조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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