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모호함을 잘 견뎌야 성숙한 사람이다.' 기억에 의존하자면 대충 이 정도 문장이었다. 묻고 따져서명백하게 알아내야 하는 직업에 철저히 길들여진 스스로를 다소 피곤하게 여기던 즈음, 그러니까 꽤 수년 전 책을 읽다가 이 대목을 한참 음미했던 적이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누가 한 말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책 몇 권을 뒤적여 보다가 관뒀다. 꼭 출처를 따져야 할 만큼 특별한 말이거나 이론이 아니지 않은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보다도 불확실성이나 모호함을 피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연구자의 이름을 붙여 '엘스버그 역설'(Ellsberg paradox)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도 불확정성이다. 양자역학 창시자인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 연구로 노벨물리학상(1932년)을 받았다. 어쩌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없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호성을 싫어하는 인간이라니. 우리가 때때로 모순적 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까.
불확실성에 두려움만 느끼는 건 아니다. 모호한 건 호기심과 매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려보자. 입가에, 눈가에 어려 있는 감정은 만족감인지 슬픔인지 알 길이 없다. 볼수록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모나리자가 끊임없는 관심과 탐구의 대상이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빈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모나리자를 그렸다. 형태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지 않고 마치 안개에 휩싸인 듯 흐릿하고 부드럽게 처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자연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경계는 흐릿하다는 레오나르도의 믿음은 그를 스푸마토 기법의 선구자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흐릿한 경계에 대한 은유"로서 이 같은 회화 기법을 처음 시도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애매함을 구현한 거장의 그림이 다시금 깊고 신비로워 보인다.
모호성을 잘 견딘다는 건 결국 세상을 잘 이해한다는 얘기다.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하다. 그러니 당장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와 시기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다면 성숙한 사람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명쾌한 건 언제나 쉽고 단순하다. 편하고 좋다. 대신 모든 불확실성이 배제된다면 삶은 단조로울 것이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확실해야 안심하던 내게 모호함을 견디는 정도가 성숙의 척도라는 해석은 앞날에 대한 조급함을 버리라는 조언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안개가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답을 구하게 되기도 한다. 불확실한 상황도 견디며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 정확하게 단언할 수 없는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지혜롭게 사는 팁인 것 같다.
조민진 작가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