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⑭비슷한 처지, 서로를 겨눈다… 청년 불안의 역설
[청년리포트-2부 불안한 청년] 변금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뷰
세대 전반에 번진 불안, 온라인 혐오문화로 표출… 안전망 구축돼야
고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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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청년층은 단순한 상실감을 넘어 '억울함'과 '불안'에 갇혀 있다. 공정 가치가 무너졌다는 배신감과 기성세대의 질타는 억울함을 키웠고, 불투명한 미래와 생존 기반 붕괴는 불안을 심화시켰다. 이 두 감정은 정치 양극화, 젠더 갈등, 혐오 확산을 촉발하며 소비 위축과 인구 절벽이라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졌다. 청년리포트는 청년의 현실을 통해 억울함과 불안의 뿌리를 진단하고, 사회적 파급과 해외 사례를 분석해 한국 사회의 해법을 모색한다.
"오늘날 청년의 삶은 살얼음이 낀 강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건너편으로 가야 하지만 얼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니 한 치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청년의 삶을 연구해 온 변금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의 실체를 이렇게 표현했다. 청년층의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 아니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 개인에게 전가되면서 발생한 일종의 경고라는 분석이다.
생애 경로 흔들리며 불안 보편화… 리스크는 개인의 몫
변 위원은 생애 경로의 불확실성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가정 형편에 맞춰 조기 취업과 대학 진학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경로가 일자리의 질을 담보했던 과거의 계층별 생애 공식이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불안이 세대 전반으로 확산했다는 뜻이다.
그는 "과거에는 빠르게 취업하거나 부모의 지원으로 대학을 나와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등 선명한 경로가 있었다 "지금은 저소득층 청년들도 대학으로 몰리고 중산층 청년들도 구직 실패를 겪으며 계층 하락 위험에 놓인다"고 분석했다. 계층과 무관하게 대다수 청년이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은 불안을 견디는 시간을 벌어줄 뿐 사회 진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짚으면서 경력 공백은 비용으로 쌓이고 부모의 기대는 청년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변 위원은 "부모의 지원으로 잠깐의 지연을 버틸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낙오의 공포가 커진다"며 "기다려 줄수록 커지는 부모의 기대를 뚫고 취업에 성공하는 청년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국가나 사회가 분담해왔던 위험이 가족과 개인의 몫이 되면서 청년들이 미래를 위험 분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게 변 위원의 시각이다. 대기업이나 전문직 등 소수의 안정적인 일자리로만 지원자가 쏠리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그는 "청년들이 취업을 미루거나 대기업·전문직에 몰리는 현상은 눈높이의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일자리에 진입했을 때 삶이 얼마나 빠르게 피폐해지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로를 향하는 불안, 온라인상 '혐오 소비'로 변질
변 위원은 구조적 모순 속에서 이어지는 각자도생의 압박이 청년들의 내면에 상처를 남긴다고 설명했다. 성인이 됐음에도 부모의 보호에 머물면서 잠재적 실패자로 평가받는 경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과 좌절, 낙오 등 복합적인 정서적 어려움이 중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인임에도 부모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구조"라며 "청년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심리적 균열이 타인을 향한 냉소와 공격으로 이어져 내부 갈등의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를 해결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의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배제하며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려는 심리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내부 갈등이 익명성 기반의 온라인 환경과 맞물려 증폭되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 변 위원의 시각이다. 그는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갈등을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서로를 틀렸다고 비난하는 행위가 재밋거리로 소비되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고 풀이했다.
변 위원은 취업 알선이나 역량 강화 등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정책은 준비된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자리의 질적 개선 등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일자리의 환경이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임금 격차, 작은 기업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 줄어드는 정규직 문제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그들이 처음 진입하는 일자리의 조건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성세대를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살얼음판 앞에 선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촉이 아니라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안전망이라는 것이다. 변 위원은 "(기성세대는) 멀리서 보면서 '왜 안 건너고 있느냐'고 묻지만 청년들은 발을 내딛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라며 "누군가는 얼음을 녹여줄 수도 있고 썰매와 배를 빌려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그런 조력자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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