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로봇의 '초음속 쓰나미'(Supersonic Tsunami)를 경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 워싱턴 로이터=뉴스1


#1. 정우성과 이정재,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 워런 버핏과 찰스 멍거, 괴테와 실러, 가우디와 구엘


남성 간의 깊은 우정, 브로맨스를 대표하는 커플들이다. 그러나 세계 역사를 바꾼 브로맨스를 딱 하나 꼽으라고 할 때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능가할 조합이 과연 있을까.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가운데 하나다.


1917년 10월 이 사상에 뿌리를 둔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세계사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소련 등 공산국가의 출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냉전을 거쳐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중러 연대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우린 엥겔스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엥겔스는 독일의 부유한 면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른바 '금수저'였지만 영국 맨체스터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뒤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요즘 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쯤 되겠다.


'소울메이트'인 마르크스를 만난 뒤인 1845년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펴낸다.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과 생산력 향상으로 영국 자본가들이 엄청난 부를 쌓고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불균형' 현상을 날카롭게 기록한 저서다.

훗날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알렌 뉴욕대 교수는 엥겔스가 기록한 1790~1840년 영국 산업계의 상황을 실제 데이터로 검증했다. 그 결과, 엥겔스의 주장대로 당시 영국에선 생산성의 비약적인 성장에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제자리에 머물렀음이 확인됐다.


알렌 교수는 생산성 향상과 실질임금 상승 사이엔 약 50년의 시차가 있다며 이를 '엥겔스의 휴지기'라고 이름 붙였다. 기술 혁신이 결국은 인류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긴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죽음의 계곡'을 지나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AI(인공지능)와 로봇으로 인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질 때 일반 근로자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찾아 '한국의 글로벌 조건 기여와 리더십'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8.21. [email protected] /사진=


#3. "변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오지.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Gradually, then suddenly)."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대개 변화는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지만, 일단 시작되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빌 게이츠는 "우리는 보통 앞으로 2년 뒤에 일어날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10년 뒤에 일어날 변화는 과소평가한다"고 했다.

AI는 이미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다음은 로봇 차례다. 일론 머스크는 AI와 로봇이 몰고올 변화를 '초음속 쓰나미'(Supersonic Tsunami)라고 표현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절반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보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AI로 대체돼 임금 감소나 해고를 겪을 것이란 분석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고학력 사무직이 많은 한국은 특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4. 낙관론도 있다. 생산성 혁명으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란 기대다. 19세기 영국에선 방직 기계에 일자리를 뺏길 것이란 공포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기계 덕분에 옷감이 싸지면서 의류 수요가 폭발한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일자리 증가를 거쳐 실질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50년 간의 엄혹한 '엥겔스의 휴지기'를 견뎌내야 했다. AI 로봇의 쓰나미 앞에 선 21세기 인류는 과연 다를까.

영국에서 '엥겔스의 휴지기'는 저절로 끝난 게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노동법이 제정되고 노동조합 활동이 본격화된 결과였다. 인류 스스로 정치적 토론과 투쟁을 통해 해법을 찾아낸 셈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비자발적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된 인류는 무슨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준다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야 할까. 로봇세를 신설하거나 AI가 활용하는 우리의 데이터에 대해 사용료를 받아야 할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사회적 숙의를 시작할 때다. 헤밍웨이가 말했듯 변화는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