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시는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을 타개하기 위해 전체 주거지역의 75%에서 용적률과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업조닝'(Up-zoning)을 단행해 주거비 안정을 이끌었다. 사진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스카이타워를 중심으로 한 전경. /사진=나무위키 캡처


#2016년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시는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을 타개하기 위해 전체 주거지역의 75%에 대해 용적률과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업조닝'(Up-zoning)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도심에 고층 건물 건설 붐이 일면서 주택 공급이 대폭 늘었다. 오클랜드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개혁 후 6년이 지난 2022년 기준 오클랜드의 임대료는 규제를 풀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한 것보다 28%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부동산 빅데이터·플랫폼 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9년까지 4년 동안 서울에 입주 예정인 새 아파트는 총 5만7010가구로, 연평균 1만4253개다. 직전 4년(2022~2025년) 연평균 입주 물량 3만2494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울의 연간 주택 수요는 1인 가구 증가 등에 따른 신규 가구 형성분 약 5만가구와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등의 과정에서 사라지는 멸실 대체 수요 약 3만가구를 합쳐 연간 약 8만가구로 추정된다. 앞으로 4년간 예정된 연평균 아파트 입주 물량(1만4253가구)으로는 서울 시민이 필요로 하는 주택 수요의 불과 17%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셈이다.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지난 1월29일 용산 정비창, 과천 경마공원, 태릉 골프장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해 수도권에 6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공급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과천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고, 인근 주민 반대도 적지 않아 추가 협의 과정에서 물량이 축소되거나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평적 공급 대책'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안이 '수직적 공급 대책', 즉 도심에 고층 건물을 집중적으로 짓는 고밀도 개발이다.

"서울 용적률, 주요 선진 도시 중 가장 낮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는 도시가 두가지 힘의 균형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2018년 한국을 방문해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에 참석한 크루그먼 교수. /사진=머니투데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는 도시가 두가지 힘의 균형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기업과 사람을 한곳으로 끌어들이는 집적의 경제, 즉 '구심력'이다. 둘째는 높은 지대와 혼잡 비용 때문에 도시 바깥으로 밀어내는 분산 압력, 이른바 '원심력'이다. 경제적 활력이 높은 도시는 이 두 힘이 시장의 신호에 따라 균형점을 찾아간다.


서울은 이미 원심력이 구심력을 앞서며 균형이 깨졌다. 1000만명이 넘던 서울 인구가 930만명대로 줄어든 게 그 증거다. 서울의 일자리와 핵심 인프라가 행사하는 구심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의 집값이 시민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도시 내부가 아닌 바깥에 주택을 공급한 대가는 작지 않다. 서울 인근에 신도시를 조성하며 '스프롤 현상'(도시의 수평적 팽창)을 초래한 정부는 신도시 주민들의 출퇴근을 돕기 위해 광역급행철도(GTX) 건설에 수십조원을 투입한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역동성을 회복하면서도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서울의 평균 용적률이 160%에도 못 미치는데, 주요 선진 도시 가운데 평균 용적률이 200%도 안 되는 곳은 거의 없다"며 "서울이 토지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고 그 결과 집값이 높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조례상 용적률이 250%인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을 400%까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 대비 지상 건축 연면적의 비율이다. 이를 완화할수록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자연스레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또 공급 가능한 가구 수가 늘어나면 재건축 사업의 사업성이 개선돼 공급 확대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예컨대 도심 정비사업에서 1000㎡ 부지에 100㎡ 규모 주택을 지을 경우 용적률을 350%에서 400%로 50%포인트(p) 높이면 가구 수는 35가구에서 40가구로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민이 원하는 도시에 살 수 있고, 주택 가격은 안정될 수 있다. 도시경제학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세계는 평평하지만 도시는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수직 정원 도시'로 변신한 도쿄 롯폰기 힐스

용적률 상향은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지상에 풍부한 녹지를 확보해 주거 공간의 혁신을 이끌어낸다. 사진은 롯폰기 힐스 전경. /사진=모리빌딩 제공


용적률 상향은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지상에 풍부한 녹지를 제공해 주거 공간의 혁신을 이끌어낸다. 고밀도 개발을 통해 도심 공간을 혁신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일본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롯폰기 힐스'다. 일본 최대의 민간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롯폰기 힐스는 노후화로 활력을 잃어 시민들이 빠져나가던 도심을 일, 주거, 여가가 어우러진 '직·주·락'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쿄도는 도시재생특별조치법 등을 통해 이곳에 1083%라는 파격적인 용적률을 적용했고, 그 결과 800여가구의 최고급 주택과 대규모 상업시설이 도심 한복판에 공급될 수 있었다. 롯폰기 힐스 재개발을 주도한 일본의 민간 디밸로퍼 모리빌딩 관계자는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자사의 핵심 콘셉트인 '수직 정원 도시'(Vertical Garden City)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수직 정원 도시는 잘게 쪼개진 파편화된 토지를 하나의 큰 부지로 통합하고 초고층 타워를 세우는 방식"이라며 "건물을 높게 지음으로써 확보된 지상 여유 공간에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푸른 녹지를 조성하고, 도심 내 부족한 고품질 주택과 공공시설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수직 정원 도시는 세계 주요 도시들이 직면한 보편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대표적으로 직장과 주거지를 가깝게 배치한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는 장거리 통근으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한다"고 했다.
모리빌딩은 무려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영세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롯폰기 일대 500여명의 지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며 파편화된 권리를 하나로 통합해 냈다. 사진은 롯폰기 일대의 과거 전경. /사진=모리빌딩 제공


롯폰기 힐스 재개발을 위해 모리빌딩은 무려 14년에 걸쳐 영세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롯폰기 일대 500여명의 지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며 파편화된 권리를 하나로 묶어냈다. 모리빌딩 관계자는 "롯폰기 힐스는 약 400명의 토지 소유주와 함게 추진된 공동 개발 프로젝트"라며 "수많은 설명회와 현장 견학을 제공하며 사람과 장소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굳게 닫혀 있던 정부의 규제 빗장을 푼 비결을 묻자 그는 "도쿄의 강점을 극대화해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공공 부문과 공유한 것이 핵심"이라며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검증된 실적이 정부의 신뢰를 얻었고, 그 결과 아자부다이 힐스나 토라노몬 힐스 같은 최근의 거대 프로젝트들 역시 국가전략특구라는 파격적인 체제 하에서 추진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도심 고밀도 개발엔 단점도 있다. 인구 밀집에 따른 교통 혼잡과 학교와 같은 기반 시설의 과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또 거대 빌딩 숲이 일조권과 조망권을 차단하고, 도심 열섬 현상을 심화시키는 등 주거 쾌적성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밀도 개발을 추진하면서 주차비 인상, 옥상 정원 구축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창규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시대에 "도심의 밀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교통 혼잡의 경우 일본 아자부다이 힐스처럼 자동차 통행을 최소화하고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뉴욕, 런던, 홍콩 등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고밀도 개발이 반드시 기반 시설 과부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공중권' 도입, 서울의 과제

보존과 개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선, 미국 뉴욕 등에서 활발히 쓰이는 '개발권 양도제'(TDR)가 고밀도 개발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주 뉴욕시 펄가 375번지 버라이존 빌딩의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보존과 개발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미국의 '개발권 양도제'(TDR)가 해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TDR은 필지에 할당된 허용 용적률 중 건물을 짓고 남은 잉여 용적률을 다른 건축주에게 팔 수 있도록 제도를 뜻한다. 이때 거래되는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공중권'(Air Rights)이라 부른다.

TDR은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면서도 도심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뉴욕시가 고안해냈다. 1963년 뉴욕시는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던 옛 '펜스테이션'(기차역)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현대식 체육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세웠다가 시민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뉴욕시는 서둘러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함부로 허물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랜드마크 보존법'을 제정했지만 이번엔 재산권을 희생시킨다는 건물주들의 반발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뉴욕시는 건물주가 잉여 용적률을 팔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는데, 이것이 TDR 제도의 시초다.

그러나 TDR을 서울에 도입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는 소유권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지역별로 땅값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용적률 거래 가격을 어떻게 산정할지 등에 대한 문제도 풀어야 한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서울처럼 지가 차이가 극심한 곳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의 토지 사이에 동일한 연면적을 주고받는 규칙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뉴욕처럼 인근 지역 위주로 공중권을 단계적으로 거래하는 방식은 지가 격차가 큰 한국 상황에서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특별취재팀=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이남의 건설부동산부 기자, 김성아 정치경제부 기자, 이화랑 건설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