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나흘째인 2022년 2월 28일 미국 민간위성업체(맥사테크놀러지)가 공개한 위성사진 한 장이 서방 세계 미디어를 도배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서북쪽 도로에 총길이 64㎞(서울에서 경기도 이천까지의 거리)에 달하는 러시아 기갑부대 행렬이 그 안에 있었다. 키이우에서 약 70㎞ 떨어진 곳이었다. 수천 대의 전차·장갑차·지원 차량이 줄지어 키이우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투입 병력은 1만5000명 정도로 추정됐다. 언론들은 '40마일 콘보이(convoy)'라고 표현했다.
2022년 2월 2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미국 상업 위성에 포착된 러시아 군 행렬. 총 64㎞ 길이로 전차, 장갑차 등이 이동했다./사진=맥사테크놀러지


러시아 부대를 저지하는 전투기도, 대포도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방어 체계는 개전 직후 공습에 허물어졌다. 키이우 함락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제국이 대군을 이끌고 주변국 성곽으로 진군해 항복을 요구하는 전쟁 사극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러시아군 행렬은 키이우 앞 27㎞ 지점에서 멈춰 섰다. 3월 11일까지 전진도, 후진도 없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행렬 선두에 있던 전차들이 자폭 드론의 공격으로 파손돼 길을 막는 신세가 됐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러시아 전차를 주저앉힌 이들은 우크라이나 민간 드론 동호회 '아에로로즈비드카' 회원들이었다.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숲을 가로질러 접근해 중국산 드론에 수류탄을 묶어 날렸다. 60억원짜리 러시아 전차가 50만원짜리 드론에 고철 더미가 됐다. 야로슬라프 혼차르 우크라이나군 중령은 "30명이 러시아군 선봉대를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북한군 병사가 증언한 드론의 위력

4년 넘게 지속된 이 전쟁에서 드론은 우크라이나 방어의 핵심 무기가 됐다. 러시아는 예상하지 못한, 하늘을 나는 기계 복병의 등장으로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민간 스타트업들이 드론을 꾸준히 개량 중이다. 이 무인기의 위력을 전장에 투입된 북한군 병사가 증언했다.

"먼저 앞장선 단위(부대)들이 모두 희생됐습니다. 무인기(드론) 하고, 포 사격 때문에 많이 희생됐습니다." "거기 들어갔다가 매복에 걸려 가지고… 매복에 안 걸릴 수도 있었는데, 무인기 때문에 걸렸단 말입니다." "'마귀 무인기'라고 압니까? 아주 큰 무인기인데 폭탄을 달고 다니는… 열 영상 감지기를 달아서 밤마다 폭탄을 떨구고 다니는 무인기란 말입니다. 그게 공중에서 계속 돌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리모(26)씨가 언론 인터뷰(조선일보, 2025년 2월 19일)에서 한 말이다. 쿠르스크에 파병돼 전투를 벌이다 팔과 턱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된 그는 연신 우크라이나 드론 얘기를 했다. 드론에 부대원들의 위치가 드러나 포격을 받게 됐고, 혼자만 살아남아 숲을 헤매다 다시 드론에 포착돼 매복 사격 표적이 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폭탄을 떨구는 드론 때문에 밤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귀 무인기'라는 표현을 썼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투입된 북한 군인이 우크라이나 드론에 쫓기는 모습./사진=우크라이나 정부 제공 영상 캡처


드론이 전쟁의 판도를 바꾼 첫 실증 사례는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이다.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 스타트업이 개발한 바이락타르 TB2 드론과 이스라엘산 하롭 드론의 활약 덕에 27년 전 패배를 설욕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관할권을 되찾았다. '넥스트 워(Next War)'의 저자 존 앤털(전직 미군 전술 교관)은 '아제르바이잔은 드론, 전자전, 사이버전을 활용해 아르메니아 수비군의 기존 우위를 뒤집었다'고 썼다.

AI가 작전 설계, 정교해진 미군

새로운 전쟁의 시대다. 과거의 전술 공식과 전쟁 문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드론 못지않게 전쟁의 양태를 바꾼 게 또 있다. 인공지능(AI)이다. 정보 분석 및 전략 수립 AI 시스템 '팔란티어'의 창업자 알렉스 카프는 "우리는 구식 기술만 가지고 전쟁에 나섰는데, 상대는 AI 기반의 디지털 타격 체계를 능숙하게 운용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라고 주장했다('실리콘밸리와 펜타곤의 비밀 전략실 유닛 X'). 돌도끼에서 칼과 창으로, 대포로, 전투기로 진화해 온 각 시대의 전쟁 상징이 AI로 또 한 차례의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1월 3일 새벽 2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군사기지 내 안전 가옥 옥상에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요원 20명이 헬기에서 내렸다. 그들은 자고 있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그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했다. 그리고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 헬기를 타고 유유히 카리브해에서 기다리는 미군 함정을 향해 날았다. 방공망 공습, 통신·전력 차단, 병력 투입, 요인 압송으로 진행된 작전에 미군 인명 피해는 제로(0)였다. 시작에서 끝까지 딱 3시간 걸렸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체포된 마두로 대통령은 한나절 뒤 뉴욕 구치소에 수감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작전이 완수됐다. 미국 언론들은 정보 수집·분석, 투입 전력 선택, 작전 계획 수립에 AI가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앤스로픽의 생성형 AI '클로드'가 주목받았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이란 최고지도자 집무 공간./로이터=뉴스1


마두로 체포로부터 50여 일 뒤인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습했다.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그의 가족, 군·정부 고위 인사 등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 측은 하메네이 집무 공간이 있는 건물이 1분 새 잿더미가 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하메네이와 주요 인물들이 그 시간에 그곳에 있다는 정확한 정보 수집과 목표 식별, 동시다발 공격으로 이란 방공망 무력화, 군사 시설 정밀 타격으로 이란의 보복 공격 차단이 치밀하게 이어졌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 기업 팔란티어가 만든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이 작전 수립과 실행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MSS는 전 세계의 온갖 데이터와 미국과 동맹국이 수집한 첩보를 통합해 상황을 판단하고 지휘권자의 의사 결정을 돕는 AI 기반 군사 시스템이다. 앤스로픽의 클로드도 MSS에 연동돼 있다.


AI의 도움을 받는 미국의 군사 작전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스마트해졌을까? 미군 '흑역사'에 답이 있다.

1993년 10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 특수부대원 18명이 전사하고, 73명이 부상했다. 반군 간부 색출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을 엄호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던 미군 헬기가 소련제 휴대용 대전차 로켓(RPG-7)에 격추되면서 시가지 전투가 벌어졌다. 고도로 훈련된 미군의 최정예 요원들이 낡은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민병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미군의 치욕으로 기록된 이 전투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소말리아 내전 개입 중단을 선언했다.
1993년 미군 특수부대의 소말리아 작전 실패를 소재로 한 영화 '블랙호크 다운'의 한 장면. /사진='블랙호크 다운' 영상 캡처


2001년 9ㆍ11 참사 뒤 미국은 총력을 기울여 테러 설계자 오사바 빈라덴을 추적했으나 10년이 지난 2011년에야 그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미국은 군사 위성으로 전 지구를 들여다볼 수 있고, 최첨단 장비로 거의 모든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으나 현실은 달랐다. 이라크전에서는 전쟁 시작부터 사담 후세인 체포를 시도했지만 임무 수행까지 8개월이 걸렸다. 나토(NATO)가 개입한 리비아 내전에서도 미국의 정보력은 신통치 않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행적 추적에 번번이 실패했다. 7개월간 도피하다 들판의 배구관 속에 숨은 카다피를 발견한 것은 시골의 반군 청년들이었다.

카터 전 장관 "민간 기술로 국방 혁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정부와 군은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버겁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애쉬튼 카터는 25년 전에 쓴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래의 국방 혁신은 상업적 목적을 위해 민간 기업이 개발ㆍ판매한 기술에서 파생될 것이다. 군은 상용 기술을 국방 시스템에 가장 빠르게 적용하고 도입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드론·로봇 분야 전문가인 심현철 KAIST 교수는 "최근의 전쟁에서 보듯 무인 무기는 필수 전략 물자가 됐다. 원천 기술은 미국이 앞서 있다 해도 제품화, 상용화 면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이다. 한국 기업의 연구·생산력을 국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당장의 손익보다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 없는 전쟁'의 저자인 최재운 광운대 교수는 "안보 분야 민간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중소 방산 업체들과 스타트업들이 탄탄해져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250개 스타트업으로 드론 생태계를 구축한 것을 기억하자. 미국의 팔란티어, 안두릴 같은 AI 국방 기업들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