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시평/강석훈] 대한민국은 다시 꿈꿔야 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대통령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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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견 기업을 경영하는 한 기업가로부터 흥미로운 일화를 들었다. 자사 주가의 저평가를 역설하는 그에게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던진 질문은 생소했다. "이 회사의 PDR은 얼마입니까?" PER(주가수익비율)도, PBR(주가순자산비율)도 아닌 용어에 당황한 그에게 돌아온 답은 짧고 강렬했다. "지금은 Dream, 즉 꿈의 시대입니다."
물론 '꿈 대비 가격 비율(Price to Dream Ratio)'은 정식 학술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을 설명하는 비유로는 꽤 의미심장하다. 결국 어떤 자산의 가격은 현재의 실적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PDR에서 꿈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꿈의 크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이다.
꿈의 크기란 단지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수익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크게 팽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까지 포함한다. 실현 가능성이란 그 기대를 현실로 바꿔낼 능력, 다시 말해 기술과 제도, 인재와 조직, 리더십과 실행력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로봇 한 대, 기술 시연 한 번, 혹은 아직 이익도 내지 못한 기업이 비전만으로 기업가치가 급등하는 현상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원래 시장은 현재보다 미래를 사고, 더욱이 요즘 시장은 실적보다 서사를 산다.
이 비유는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가 시가총액 또는 1주당 가격으로 표현되듯, 국가의 가치는 GDP 또는 1인당 GDP로 표현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꿈이 크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듯, 국가 역시 미래 비전이 분명하고 그것을 실현할 역량이 있다고 평가받을수록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PDR 관점에서 오늘의 한국 경제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냉정하게 말해,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 둔화는 더 이상 추상적 우려가 아니다. 1964년부터 1994년까지 30년 동안 달러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1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24년까지 다음 30년의 증가 폭은 3배 남짓에 그쳤다. 2024년부터 2054년까지 다가오는 30년의 증가폭은 2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성장의 속도와 밀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다.
성장 둔화 추세는 그 자체로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PDR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미래 가치는 그 국민이 그리는 꿈의 크기와 실현 가능성의 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는 실현 가능성 이전에, 정작 꿈 자체의 크기가 왜소하거나 목표가 희미하다는 데 있다. 꿈이 없으면 계획도 없고, 계획이 없으면 실행도 없다.
이른바 '피크 코리아' 논의가 던지는 진짜 경고도 여기에 있다. 정점에 도달했느냐 아니냐가 본질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도약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꿈을 잃은 사회는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를 소진한다. 자산을 축적하기보다 부채를 앞세워 오늘의 만족을 늘리려 한다. 사회 전체의 시선이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만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원래 꿈이 없던 나라가 아니라, 매번 더 큰 꿈을 꾸면서 하나씩 꿈을 달성하던 나라였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의 꿈을 이뤘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중진국 도약의 꿈을 이뤘다. IMF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충격을 겪고도 제도와 산업을 재정비하며 중진국 함정을 넘어서 선진국 진입의 꿈을 이뤘다.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현실로 만든 경험이 이미 우리 안에 축적돼 있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는 다시 꿈을 꿔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지고, 대한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꿈의 방향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의 번영과 지속가능성을 선도하는 필수불가결한 핵심국가가 되는 것이 꿈의 크기이다. 꿈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연료는 리더십과 국민 공감대이다. 분열을 통해 작은 이익을 탐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을 통해 더 큰 미래를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없이 많은 토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꿈이 나의 꿈이 되어야 그 꿈은 달성될 수 있다.
이제 다시 꿈을 시작하자. 다시 꿈꾸는 대한민국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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