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금융시장 불안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미뤄지는 가운데 정책 일정과 시장 움직임 간 '속도차'가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결제 시장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반면, 국내는 법적 기반이 지연되면서 카드업계가 선제 대응에 나서고도 방향을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중동발 금융시장 불안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미뤄지는 가운데 정책 일정과 시장 움직임 간 '속도차'가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결제 시장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반면, 국내는 법적 기반이 지연되면서 카드업계가 선제 대응에 나서고도 방향을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2026년 3월19일) 더불어민주당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중동 전쟁 이후 환율, 증시 등 금융시장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이 공식 논의 안건에서 제외됐다. 당초 정부·여당은 이달 초 해당 법안 최종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중동 사태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다만 이르면 다음 주 디지털자산기본법 관련 당정협의 개최를 추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 발행·유통·공시·상장 등 전반을 포괄하는 법으로 업계에서는 '디지털자산 헌법'으로 불린다. 정부가 1분기 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만큼, 향후 입법 일정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입법 지연이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관련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이후 국경 간 거래 규율 정비, 디지털자산 현물 ETF 도입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지만 기본법 처리가 늦어질 경우 전체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지연되는 사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서 통화 주권 훼손 우려와 투자자 보호 공백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공백 속에서 카드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2026년 중소금융 금융감독 업무설명회'를 통해 카드사와 여전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 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카드업계 입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기회로 평가된다. 카드론과 리볼빙 등 기존 수익 구조가 건전성 부담을 키우고 있는 데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본업 수익성도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사업과 슈퍼앱 전략 역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신사업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실제 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술 검증(PoC)에 착수했으며, 개별 카드사들도 디지털 지갑 구축, 하이브리드 결제 기술 개발, 결제 인프라 연동 등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지갑 간 송금, 카드망 연계 POS 결제, QR 기반 정산, 포인트의 스테이블코인 전환 등 다양한 실사용 시나리오까지 검증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주요 결제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인프라 구축에 나서며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투자 자산을 넘어 실제 지급결제 수단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반면 국내는 법적 틀이 마련되지 않아 산업 준비 속도와 정책 속도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제도 정비가 늦어질 경우 글로벌 결제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제도 방향이 명확하지 않아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 변화에 대비해 준비는 하고 있지만 실제 실행 단계로 나아가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는 상용화를 전제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책은 아직 탐색 단계에 머물러 있어 속도 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상황은 '입법 지연'이라는 단일 이슈를 넘어 시장은 먼저 움직이고 정책은 뒤따르는 구조적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제도 정비 속도가 향후 산업 주도권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