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추워도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2025년 12월 시민에게 조건 없는 개방을 결정한 미군 용산기지 내 용산어린이정원에는 요즘 주말이면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로 북적인다.


서울 도심에 30만㎡ 크기의 공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용산기지 면적(203만㎡)은 정원의 6.8배다. 2022년 정부가 공개한 용산기지 반환 면적은 76만4000㎡로 전체의 38%에 해당한다.

얼마 전 만난 복수의 지방정부 고위공무원들은 "용산기지 부지 사용이 외교 협상에 의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해도 담장(외벽)만은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2003년 한·미 당국이 용산기지 이전에 합의한 후 수십년간 반복돼온 반환 논쟁과 보안 해제, 오염 정화 등 여러 난제에서 '담장 철거'라는 아이디어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알고 보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2020년 5월 용산기지의 일부 땅인 미군장교숙소는 개방보다 앞서 담장 15m를 철거했다. 공사 차량의 출입 목적도 있지만 시민들이 기지 반환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국토교통부가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변경·고시한지 4년째를 맞는다. 올해 1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공원 조성의 방향을 제시했을 뿐 담장 철거 계획은 명시하지 않았다. 과거 논의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도심 한가운데 이태원과 해방촌, 용산역과 남영동을 가로지른 수킬로미터의 벽돌·철조망은 1904년 이후 122년 동안 시민의 발길만이 아니라 눈길마저 거부해온 금단의 땅이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알리는 영문 경고문은 도시 지형과 녹지의 단절을 넘어 일제강점기, 그리고 전쟁 역사의 아픔으로 인식된다.


용산기지 밖에서 보면 담장 너머 광활한 땅은 면적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용산기지 부지는 여의도 면적(290만㎡)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또 다른 현실은 물리적인 담장보다 견고한 '정보의 장벽'이다. 국가 주권의 회복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정보 독점은 '심리적 점유'와 다름없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예약과 신원 검사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됐고 용산가족공원과 산책로도 시민 이용 공간이 된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체감하는 이들은 여전히 적다. 반환이 완료된 후에도 방치된 부지는 정부 통계와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토양과 지하수 오염 수치, 정화비용 등 정보 공개에 대해 정부는 지극히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벤트성 체험행사 등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보다 정보 공개가 더 시급하다.

글로벌 도시 서울의 발전에도 용산기지 사업 지연은 방해가 된다. 정부가 약속한 2027년 용산공원 조성계획은 이행이 쉽지 않고 한국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수용해야 하지만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기약 없이 미뤄지는 용산기지 반환보다 담장을 먼저 허무는 것은 '연결'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용산의 주인인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김노향 건설부동산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