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공장. / 사진=금호석유화학그룹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업황 둔화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로 사면초가에 놓인 석유화학업계가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높인다. 범용 대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의 무게 중심을 이동해 생존 활로를 모색하려는 전략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석화업계는 총체적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가장 큰 부담 요인은 중국의 과잉 생산이다. 중국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 우위를 확보한 결과 범용 석유화학 제품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나프타 분해 시설(NCC)을 통한 에틸렌 생산의 일반적인 손익분기점(BEP)은 톤당 250~30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스프레드가 이 가격 아래인 경우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지난 2월엔 3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최근 중동 전쟁으로 석유제품 수급이 차질을 빚으며 공급 과잉 구조가 일부 완화돼 에틸렌 스프레드 가격이 손익분기점에 근접할 정도로 반등했으나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나프타분해설비(NCC) 공장 가동 연쇄 중단이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한국 석유화학업체는 나프타 크래커 중심 구조여서 중동산 원유·나프타 조달 차질이 곧바로 기초유분 원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긴 어려워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수록 석화업계의 손실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번진다.


석화업계는 사업재편을 통한 체질개선으로 위기 돌파를 모색하고 있다. 범용 대신 고부가가치 소재 분야를 대폭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LG화학은 현재 1 원 규모의 전자소재 사업을 2030년까지 2조원으로 확대하며 미래 포트폴리오 전환과 기술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핵심은 전자소재다. AI반도체, 자율주행, 차세대 디스플레이 확산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게 LG화학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반도체·전장·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전자소재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최근 첨단소재연구소 산하에 관련 선행연구개발 조직을 통합·신설했다. 또한 메모리용 소재로 축적한 기술을 기반으로 AI·비메모리용 패키징 소재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배터리 및 ESS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열 접착제를 포함해 모터, 전력 반도체, 통신 및 센서 등 전장 부품용 소재 시장을 전략 육성하고 XR·로봇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디바이스 시장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공장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롯데케미칼대산석화(가칭) 주식회사'를 신설하고 HD현대케미칼 간 합병을 진행한다. 원료부터 제품까지 수직 계열화를 강화하고 범용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고부가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업재편이다.

2030년까지 기능성 소재 비중을 60% 이상으로 확대하고 화학군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서 스페셜티 화학 기업으로의 전환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자회사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전남 율촌산단에 국내 최대인 연 50만t 규모 컴파운딩 공장을 구축해 모빌리티·IT 등 핵심 산업 맞춤형 고기능성 소재를 공급할 계획이다. 롯데SK에너루트는 올해 말까지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4기를 추가 구축해 총 80MW 규모의 전력을 20년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하이엔드 동박과 인공지능(AI)용 고부가 회로박 공급도 늘리고 반도체 현상액(TMAH) 추가 생산 설비 확대도 추진한다.

금호석유화학은 전기자동차 시대의 핵심 소재인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 고무(SSBR)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연간 3만5000톤 규모 SSBR 증설 완료해 올해 1분기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금호미쓰이화학은 메틸렌 디페닐 디아소시아네이트(MDI) 생산능력을 10만톤 증강해 2024년 20만톤 증강에 이어 2년간 총 30만톤 생산 능력 확대를 추진했다.

금호폴리켐 역시 지난해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고기능성 특수 합성고무 소재인 에틸렌 프로필렌 디엔 모노머(EPDM) 7만톤 증설을 통해 연간 31만톤 규모의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이 외에 한화솔루션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고부가가치 초고압 케이블 소재 시장을 낙점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400kV급 초고압 케이블용 반도전(EBA) 소재 생산을 증설해 고전압 송전망 및 해저 케이블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고부가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