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 사업이 경쟁입찰 방식 확정 이후 추가 소송전에 휩싸이면서 사업 지연을 둘러싼 방사청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이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에 나서면서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쟁입찰 방식 확정 이후 추가 소송전까지 불거지며 사업 지연을 둘러싼 방사청 책임론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참여 업체들과의 소통 부재, 평가 기준의 일관성 부족 등 미흡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에 방사청을 상대로 KDDX 기본설계 제안 요청서(RFP) 배포 및 자료 공유 관련 가처분을 신청했다. 방사청이 배포할 기본설계 자료에 최신 공법과 신기술, 제품 사양 및 가격 등 입찰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사의 영업비밀이 담겨 일부 공개를 제한해달라는 취지다.

KDDX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등 순서로 진행된다.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했고 현재는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 단계다. 그동안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상세설계를 진행해 왔지만 방사청은 지난해 지명경쟁입찰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기본설계를 수행하지 않은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 자료가 공개될 경우 불공정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경쟁사의 가격 정보를 사전에 파악할 경우 입찰 과정에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KDDX 사업추진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 같은 우려에도 방사청은 가처분 신청 이틀 만에 RFP와 기본설계 자료를 배포했다. 업계에서는 일방적 조치가 오히려 소송전을 확대해 사업 지연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수의계약 관행이 깨지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특정 업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사청이 보다 세밀한 검토를 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업비밀이 쉽게 공개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기본설계 업체들이 어떻게 방사청을 신뢰하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HD현대중공업의 보안 감점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방사청은 당초 지난해 11월까지였던 감점 기간을 올해 12월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최근에는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감점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소수점 단위로 수주가 갈리는 함정 사업은 감점 여부가 핵심 변수임에도 이를 명확히 결론 내지 못한 것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제안서 평가 시 보안 감점 적용 여부는 제안서 평가위원회에서 결정된다"며 "방사청 직원뿐 아니라 민간위원도 포함돼 있어 방사청의 단독 결정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방사청의 중재가 미흡했다는 시각도 많다. 건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국내 방산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끌어야 할 방사청이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업체 간 갈등을 키워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의 상세설계 입찰 포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본설계 자료 공유'와 '보안 감점'이라는 이중 부담으로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했다는 분석이다. 경쟁 구도가 무너질 경우 시장 규모가 위축돼 방산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KDDX 사업이 2년간 지연된 데에는 방사청의 미숙한 업무 처리와 소통 부재가 결정적이었다"며 "캐나다 잠수함 사업 등 도전 과제가 많은 상황에서 갈등이 심화할 경우 '원팀'으로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다. "국내 해양 방산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끌기 위해 정부의 세심한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