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 1530원을 돌파했다. 금융권에선 중동리스크 장기화로 당분간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은 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 환전소에 원·달러 등 각국 환율이 표시된 모습. /사진=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530원선에서 마감하며 금융시장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단기 급등세가 이어지며 일각에선 1600원선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향후 중동 정세에 따라 환율 방향성이 크게 갈릴 수 있는 만큼 상·하방 모두 열어둔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4.4원 오른 1530.1원에 마감했다. 주간 거래 종가가 1530원을 돌파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9일(1549원) 이후 처음이다. 환율 급등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국제유가가 오르고 달러 강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금융권에선 환율 상단을 1600원으로 보는 것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중동 리스크라는 변수가 향후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1600원 돌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며 "전쟁이 확전되고 유가가 더 오르면 환율 눈높이가 높아질 수 있지만 반대로 협상 타결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 이뤄질 경우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상·하방을 모두 열어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펀더멘털(기초체력) 요인 역시 환율 상승을 제어하는 변수로 지목했다. 최근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와 달러 유입 확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기대와 외국인 투자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 역시 외환시장 수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 이 연구원은 "WGBI 편입과 반도체 호조 등은 환율 상승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550원대까진 충분히 오를 수도...미국·이란 확전이 변수"

미국과 이란 간 확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원은 "당장 1600원을 전망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1550원대까지는 충분히 열려 있는 상황"이라며 "지상전으로 확대될 경우 환율 상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전쟁 양상이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 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지상전 투입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증권가에선 외국인 자금 이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 경우 현재와 같은 환율 상승 추세가 최대 수개월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인프라 손실 여부도 주목해야 한다. 중동 지역 내 주요 에너지 시설이 타격을 입을 경우 국제유가가 추가 상승할 수 있고, 이는 원화 약세 압박을 더 키울 수 있다. 다만 전쟁이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더라도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과 주가 흐름이 환율에 추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불확실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이 서 연구원의 분석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4월 환율은 1500~1560원 범위를 예상한다"며 "미국이 전쟁 종결을 선언하더라도 해협 정상화와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올 상반기에는 1460~1560원 범위, 하반기에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반영해 1400~1500원 수준을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외환당국 개입은 아직…"IMF 때와는 전혀 달라"

최근 환율 급등에도 불구하고 외환당국이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는 배경에는 구조적인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1997년 외환위기의 본질은 환율 상승 자체가 아니라 이를 버틸 수 없는 구조적 취약성이었다"며 "현재 한국은 단기 외채 구조, 외화보유액, 환율 제도 등에서 당시와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개입 효과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외화보유액을 소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며 "외환당국의 개입 기준은 특정 환율 수준이 아니라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 여부"라고 강조했다. 환율 수준 자체보단 시장 안정성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란 의미다.

종합하면 현재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당분간 원/달러 환율은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상단 테스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1600원선 돌파 여부 역시 중동 전쟁의 향방을 비롯해 국제유가 흐름 등 복합적인 변수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