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이 9일 재선거를 요구하는 문구를 붙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를 처음 14곳이라고 밝혔다가 50곳, 다시 91곳으로 정정했다. 선거 당일 준비 부족에 이어 사후 현황 파악 과정에서도 혼선을 빚은 셈이다. 주요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급증해 온 실태도 확인됐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문제점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국민적 불신은 커지고 있다. 2030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표소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점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특정 직원이나 개별 투표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과 관리 체계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다.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 역시 채용 비리와 내부 통제 부실, 폐쇄적 조직 문화 등 수년째 이어져 온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개혁 논의는 매번 동력을 잃어왔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에 대해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선관위는 외부 통제 강화나 감사 제도 도입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결국 개혁 논의는 독립성과 통제의 충돌 속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이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도 개혁이다. 선관위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은 각종 개혁 법안을 쏟아냈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선거 관리 실태를 상시 점검하는 특별감사관 제도, 외부 인사 중심의 감사위원회 설치 방안도 국회 상임위에 장기간 계류돼 있다. 선관위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개혁 과제를 방치해 온 정치권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말뿐인 쇄신으로 끝난다면 유사한 논란은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선거 준비와 위기 대응 절차를 표준화하고 투표용지와 선거인명부, 개표 관리 전 과정을 외부에서 상시 점검할 수 있는 감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관리 소홀이나 보고 누락이 확인될 경우 책임을 명확히 묻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대법관과 지역 법원장이 선관위원장을 비상임으로 겸직하는 관행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립성은 지키되 책임성과 투명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선관위 운영과 선거 관리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다만 개혁 논의가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정파적 공방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전국 단위 재선거 주장이나 근거 없는 의혹 확산은 문제 해결보다 사회적 불신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재선거 여부는 법률이 정한 절차와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국정조사와 수사 역시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사실관계 규명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별건 수사나 책임 떠넘기기식 결론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 선거 시스템의 실패에 있다. 정치권과 선관위는 책임 공방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선거 관리 체계를 복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기본 시스템을 바로 세우라는 게 개표소 항의 시위에 나선 2030 청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번 일을 또 하나의 정쟁 소재로 소비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기회마저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