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한국 프로야구가 역대 최소 경기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4월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의 관람 장면. /사진=뉴스1


1년에 20번 정도 야구 경기를 '직관'하는 LG트윈스 팬 유모(27) 씨에게 암표 구입은 익숙한 일이다. 정상적으로 표를 구하기 위해 오전 11시마다 '예매 전쟁'에 뛰어들지만, 성공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유 씨는 "11시 00분 00초에 맞춰 공식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도 곧바로 수천 명의 대기자가 뜨고, 기다리고 나면 이미 표는 매진된 상태"라고 했다.


결국 유 씨는 '티켓베이'나 '중고나라' 등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향한다. 정가가 2만 원대인 응원석 가격은 이미 4만~7만 원으로 뛴 상황. 구단이 주관하는 특별 이벤트 날에는 티켓가격이 수십만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유 씨는 "20대인 나도 표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온라인 예매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 나이대 야구팬들은 암표 말고는 직관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상황이다. 매일같이 야구장은 매진 행렬인데, 정작 암표를 사서 들어가면 빈 좌석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암표상들이 티켓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의미다. 도대체 그들은 그 많은 티켓을 어떻게 구하는 걸까.


선예매권에 선선예매권까지 파는 프로구단들

'동행미디어 시대'가 어렵게 만난 암표상 A 씨는 "구단마다 판매하는 선예매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모두 '선예매' 혜택을 주는 유료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통상 연간 10만~15만원을 내면 공식 예매 오픈 시간보다 먼저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구단은 더 많은 비용을 내면 선예매보다 더 빨리 티켓을 살 수 있는 '선선예매'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B구단의 경우 연간 15만원을 내면 공식 예매 시각보다 하루 앞서 경기당 최대 4장의 티켓을 살 수 있다. 10년 연속 멤버십에 가입하면 이틀 일찍 예매가 가능한 '선선예매' 혜택이 주어진다. C구단은 연간 13만원을 내면 1인 최대 2매까지 하루 전 선예매가 가능하다. 연간 약 100만원 정도 하는 시즌권을 구입한 이들은 이보다 30분 더 빨리 '선선예매'를 할 수 있다.


암표상 A씨는 "부모님을 포함해 온 가족 명의로 선예매권을 다수 사놓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 보니 선예매 경쟁도 치열해져 선예매 때에도 매크로(자동 반복 프로그램)를 돌려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암표상 한 명이 10명의 명의를 빌려 15만원짜리 선예매권 10개를 확보한 뒤 경기마다(한 구단당 연간 경기수는 144경기) 2만원짜리 티켓 10장을 선예매해 두 배 가격으로 판다면 연간 2730만원의 수익을 얻게 된다. 물론 판매 티켓이 많을수록, 정가에 붙이는 웃돈이 높을수록 암표상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중고 거래 플랫폼에선 선예매권 자체를 거래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멤버십 아이디를 건당 수수료를 받고 거래하는 방식으로, 티켓이 아닌 '예매 권한'을 거래하는 형태여서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가고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프로야구 선예매권을 대여하거나 웃돈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사진=중고나라


인기 구단의 경우 선예매만으로 바로 야구장 전체 좌석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멤버십 가입자를 두고 있기도 하다. D구단의 경우 성인 회원 8000명(각 2매씩 선매도 가능)에 어린이 회원 2000명(각 4매씩 선매도 가능)까지 합하면 멤버십 가입자만 1만명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선매도에 나선다면 2만4000여석의 D구단 야구장은 바로 만석이 된다. 일반인이 공식 예매 사이트를 통해 표를 구한다는 게 애초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100만원 미만은 괜찮다?…암표시장 키우는 중고거래 사이트

이처럼 선예매권이나 매크로 없이 티켓을 구하는 게 어려워지자 암표 거래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 따르면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는 2021년 1423건에서 지난해 4만1292건으로 5년 사이 30배 가까이 폭증했다.

암표 거래가 늘어난 또 다른 원인으로는 거래 창구의 양성화가 꼽힌다. 야구팬들이 암표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사이트인 '티켓베이'는 개인 간 티켓 양도를 위해 만든 합법 사이트다. 부득이하게 일이 생겨 관람이 힘들 때 수수료를 내고 취소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표를 넘기는 것이 낫다는 취지에서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티켓베이와 같은 중고 거래 사이트가 암표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매크로를 사용해 예매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웃돈을 붙여 티켓을 팔아도 단속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티켓베이에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입장권이 최고 999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암표 신고가 접수된 플랫폼 중 78.7%가 티켓베이였다. 2위인 당근마켓(10.2%)과 비교해 압도적 1위였다.

오는 11일 열리는 KBO 올스타전의 응원석 가격은 한 매당 50만원에 팔리고 있다. /사진=티켓베이


그러자 티켓베이는 올해부터 티켓 1매당 기준 거래 가격을 100만원 미만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천정부지로 뛰는 암표 가격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주말 기준 6만2000원에 판매하는 잠실야구장 테이블석은 지난 1일 기준 티켓베이에서 4배나 비싼 2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오는 11일 열리는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응원석 가격은 정가가 4만5000원인데, 티켓베이에선 무려 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정부는 '암표와의 전쟁'을 준비 중이다.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다음달 28일부터 매크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부정거래를 단속할 예정이다. 부정거래란, 상습 또는 영업으로 자신이 구입한 가격을 넘는 금액으로 입장권을 판매하는 행위다.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판매 금액의 최대 50배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암표 수익을 몰수하는 내용도 담겼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6 공식 개막전 인천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경기를 찾아 암표 부정구매 금지 문구가 표출되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그러자 이 법 시행 이전에 '한 몫' 챙기려는 암표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암표 신고 모니터링을 통해 대량으로 암표를 판매한 15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한 판매자는 올해 6월까지 총 110장의 프로야구 입장권을 암표로 팔았고, 또 다른 판매자는 프로야구 한 경기 입장권만 54장을 암표로 판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암표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암표상에 대한 집중 단속과 함께 프로야구 구단들의 무분별한 선예매권을 억제하고, 중고 거래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