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7년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의 재정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쪽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 관리를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역대 최대 예산안을 편성하며 확장재정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된 정책으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7년도 예산안 당정협의를 열고 사상 최대인 800조원 이상으로 편성될 예정인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 자리에서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 가장 많은 추가 세수가 들어올 예정"이라며 "이것을 활용해 미래 대응 기금을 만들어 청년 세대, 성장 동력, 지방, 인재, 교육 분야에 재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처는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800조원대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총지출을 편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병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역시 "내년도 예산안은 800조원 플러스알파로 편성될 예정이고 국세 수입도 500조원 이상의 사상 최대 세수가 걷힐 전망"이라며 "미래 대응을 위한 전략적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국가 재정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갑자기 굴러들어온 막대한 세수를 확장재정에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 정부와 여당 모두 공감대를 보였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은 경기 부진시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물가인상을 우려한 금리 인상과 겹칠 경우 정책 효과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0%)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전달에 이어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여기에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고 수도권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기준금리 인상 배경으로 꼽혔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27년 예산안 당정협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물가를 잡겠다'는 통화당국과 '미래 성장동력에 재정을 쏟아붓겠다'는 재정당국이 정반대 신호를 시장에 내놓는 셈이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서로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물가 우려로 최소 2~3차례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태에서 확장재정이 겹치면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는 보지 못한 채 통화당국의 물가안정 과제만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대규모 국채발행으로 채권시장의 금리가 오르게 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운용할 수 있는 여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물가상승률이 더 가팔라지면 한국은행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우형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금은 재정지출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내년 물가 상승이 예견된 상황"이라며 "이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까지 늘리면 한국은행은 이자율(기준금리)을 더 올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다. 물가가 상승 중인 국면에 대규모 재정지출까지 더해지면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정경제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명목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12.3%로, 실질성장률을 3.0%로 전망한 바 있다. 실질성장률이란 명목 성장률에서 물가상승분을 뺀 수치다. 바꿔 말하면 물가상승률이 약 9%라는 뜻이다. "돌아가는 경기 상황을 보면 인플레이션 역풍이 예견된 수순"이라고 홍 교수는 경고했다.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예산은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양 교수는 "일시적으로 증가한 세수를 갖고 재정지출에 연연하기보다는 국가 채무를 갚고 재정 건전성을 높이면서 국민들의 저금리 저환율, 저물가 상황 속에서 경기가 살아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