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반도체 사업 확장과 그룹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SK실트론 인수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7개월 넘게 교착 상태에 빠졌던 SK실트론 매각 협상이 이번 주 중대 분수령을 맞은 가운데 단기간에 높아진 몸값에도 인수 의지를 굽히지 않는 두산그룹의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미래 성장축으로 점찍은 반도체 사업의 체급을 키우는 동시에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오는 31일 이사회를 열고 주요 경영 현안을 논의한다. 이날 SK실트론 지분 매각도 안건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대상은 SK㈜가 보유한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으로 묶인 지분 19.6%를 합친 SK실트론 지분 70.6%다. SK㈜는 지난해 12월17일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인수가격과 세부 거래 조건을 협의해왔다. 올해 상반기 중 본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기업가치 산정을 둘러싼 양측 협의가 길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두산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5조원 안팎으로 평가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으로 최근 시장에서는 7조~8조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 생산기업이자 12인치(300㎜)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다.


기업가치가 단기간에 높아지면서 인수자인 두산그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SK㈜가 가치 상승분을 매각가격에 반영하면 두산그룹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이사회 판단이 매각 철회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국면에서 알짜 자회사를 넘기는 것이 그룹 전체에 득이 되겠느냐는 반론이 SK(주) 내부에서도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를 재산정해 조건을 조정하는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본계약 체결이 지연되자 일각에서는 가격 부담을 느낀 두산그룹이 인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두산그룹은 지난 27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딜팀이 계속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며 인수 중단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두산그룹이 높아진 SK실트론 몸값에도 인수를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반도체 사업과의 시너지다. ㈜두산 전자BG의 동박적층판(CCL)과 두산테스나의 시스템반도체 후공정 테스트에 SK실트론의 실리콘 웨이퍼가 더해지면 반도체 소재부터 후공정까지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된다. 고객 접점 확대도 기대된다. 두산테스나가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왔다면 SK실트론은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아우르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수익원 다변화도 꾀할 수 있다.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 이후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솔루스 등 주요 자산을 매각하고 로봇·연료전지·반도체 후공정 등 신사업을 확대해왔다. 실적 기여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 많은 만큼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등 기존 캐시카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최근 AI 확산으로 전자BG가 가파른 실적 개선세를 보이는 가운데 SK실트론이 가세한다면 반도체 소재 사업은 그룹 내 안정적인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BG는 2분기 매출 7652억원, 영업이익 2120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SK실트론의 실리콘 웨이퍼 부문은 지난해 40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2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핵심 제품군인 12인치 웨이퍼 판매 물량의 80% 이상이 장기공급계약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실적 변동성도 낮다. 약 2조3000억원이 투입된 구미 신규 공장이 올해 3분기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만큼 실적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 정리도 인수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SiC 부문은 2020년 인수된 이후 매년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 541억원을 기록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단기간 내 실적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SK실트론은 미국 SiC 웨이퍼 생산법인 SK실트론CSS의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연내 청산이 마무리되면 SiC 부문 적자로 인한 SK실트론의 수익성 부담도 완화될 전망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인수 관련 협의는 진행되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서 딜팀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웨이퍼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진 만큼 인수 성사 시 그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