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지난 7월30일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한동훈 무소속 의원(초선·부산 북구갑)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기 위한 '상향식 공천권' 법제화 검토에 나섰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보완수사권 폐지 비판 등 대여 공세로 여론의 관심을 끈 데 이어 '정치 개혁' 어젠다를 내세워 이슈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의원은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에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방식을 포함한 상향식 공천 법제화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조사가 구체화되고 법제화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토론회도 연다는 계획이다. 한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언론사 조찬포럼에서 "국회의원 공천권을 당 대표가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했다.

한 의원이 검토 중인 오픈 프라이머리는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가 정당 경선에 참여해 후보자를 뽑는 제도다. 한국의 공천은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가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여서 선거 때마다 '사천' 논란과 '줄서기 정치' 시비가 반복된다는 게 한 의원의 판단이다. 공천권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공천 헌금 시비와 계파 간 나눠먹기 공천에 따른 당내 분란이 되풀이된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이 시점에 상향식 공천 카드를 꺼낸 것은 우선 거대 양당의 적대적 대결 구조에 경종을 울리며 존재감을 키우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사생결단식으로 흐르는 이유 중 하나로 2028년 총선 공천권이 지목되고, 국민의힘 내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 역시 총선 지휘권 확보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법 이슈에선 강점을 보인 한 의원이 정치·경제 현안에서도 어젠다 제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정치 개혁' 어젠다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의원이 상향식 공천 필요성에 대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라고 밝힌 것을 두고는 국민의힘 복당을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복당 후 당권을 확보하더라도 공천 문제를 놓고 당권파 등과 갈등은 빚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간접적으로 발신했다는 해석이다.

김무성-문재인, 2015년 추진했으나 무산

2015년 12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모습. / 사진=뉴시스


선진국에서도 후보 선출의 무게중심은 정당에서 유권자로 옮겨가는 추세다. 미국은 당원 중심의 코커스(당원대회)를 폐지하고 일반 유권자가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로 전환하는 주가 늘고 있다. 다만 아이오와 등 일부 주는 정당이 비용과 운영을 직접 맡아 후보 선출 절차의 통제권을 지킬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코커스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법제화되려면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57조의2는 경선 실시를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으로 두고 있는데, 이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것이 법제화의 핵심 축이다.

정당법의 경우 제28조에 당헌으로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도록 의무화하는 있다. 이 조항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예비선거 절차'를 필수 기재사항으로 추가하면 각 정당이 제도를 우회할 수 없다. 이밖에 ▲경선 운동 방식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57조의3 ▲여론조사 방식의 예비선거와 충돌할 소지가 있는 제108조와 제254조 등도 정비 대상으로 거론된다.

법 개정과 별개로 각 당의 당헌·당규 개정도 필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공천관리위원회 구성권과 비례대표 추천권을 당대표에게 집중시켜 놓고 있다. 국회의원 경선의 기본 골격 역시 당원 투표 50%와 국민 여론조사 50%로 짜여 있어 국민이 후보를 직접 뽑는 완전국민경선과는 거리가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은 2015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추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김 대표는 "한국 정치 부조리의 90%는 공천에서 오는 만큼 공천 혁명은 여야가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여야가 같은 날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대표 선거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공약해 논의가 구체화됐지만 당내 반발 등으로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강성 지지층 목소리가 여야 대표…정치 개혁 필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지난 7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자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이 무산된 가장 큰 이유는 역선택 논란이다. 경쟁 정당의 지지자들이 경선에 참여해 경쟁력이 약한 후보가 공천을 받도록 밀 수 있다는 우려다.

현역 프리미엄도 넘어야 할 벽이다. 일반 유권자 투표로 후보를 정하면 인지도와 조직에서 앞선 현역 등 기성 정치인이 유리해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실력보다 팬덤에 기댄 인사가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경선 판이 커질수록 조직 동원과 금품 제공 등과 같은 구태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천권을 틀어쥔 정당 지도부의 저항도 걸림돌로 거론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한 의원의 상향식 공천 주장에 대해 "현재 여야의 강성 지지층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라며 "여야 모두 여론을 무시하고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만 끌려다니는 형국에서 시의적절한 정치 어젠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픈 프라이머리를 추진한다면 역선택 방지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여야가 함께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다만 강성 지지층만 보는 현재의 정국에선 추진 자체가 쉽지 않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