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작품은 흥행 불패로 한국 영화계의 신기록을 갱신해 왔었기에 신작"마이웨이"는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의 첫번째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1996년에 전국 150만(서울 66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1999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 23억원으로 만든 두 번째 영화 ‘쉬리’에서는 전국 582만(서울 245만)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영화 사상 최다 관객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그 뒤 '친구'와 '실미도'에 의해서 기록이 깨진 뒤, 다시 한국영화사상 최대 제작비인 170억원을 투입하여 만든 '태극기 휘날리며'로 전국 1175만(서울 351만)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네 번째 작품 '마이웨이'도 순제작비 280억원,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합하면 3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한중일의 세 톱스타(한국의 장동건, 일본의 오다기리 조, 중국의 판빙빙)까지 함께 출연하였기에 다시 새로운 기록을 기대할만 했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관객이 1천만명은 되어야한다는 말도 있었듯이 감독이나 투자회사에서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개봉한 이후로 호응이 좋지 않고 관객수가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네이버 네티즌 평점도 전작들에 비해 훨씬 낮으며 전문가들로부터도 전반적으로는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흥행성적이 다른 영화라면 괜찮은 수준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수년만에 발표하는 블록버스터로서 워낙 기대감이 컸고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갔기 때문에 영화계에 충격을 줄만 하다.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영화나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전개되는 대하드라마를 필자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한다. 그런 영화라면 다른 관객들은 지루하고 재미없어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 몰입되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감성과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필자도 ‘마이웨이’에서는 중반부터 몰입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후반부에는 살짝 졸기도 했다.


 
이와 정반대로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엽기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이다. 2010년 영화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은 객석에서 비명 소리가 많이 터져 나오는 등, 잔인한 복수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끔찍한 연쇄 살인 장면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난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면서 뛰어난 감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실제로 장철수 감독은 그해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으며 칸 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7억원이라는 저예산 영화로서 처음에는 스크린에 제대로 걸리지도 않다가 본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이 났었다.
‘마이웨이’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영화임에도 왜 재미없게 느끼고, ‘김복남’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영화임에도 왜 재미있게 느꼈을까. 그것은 ‘마이웨이’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마음과 행동에는 공감하지 못했고, ‘김복남’에 나오는 주인공의 복수하는 행위에는 심리적으로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들도 김복남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후련한 만족을 했다.


‘마이웨이’가 화려한 볼거리만 내세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모를까, 전쟁 속에서 꽃피는 우정과 휴머니즘을 강조한 작품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마음에 대하여 인간적인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복수가 주제라면 복수하는 사람의 마음을 관객이 절절이 느낄 수 있어야하듯이, 숭고한 인류애가 주제라면 그 또한 관객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관객들이 형제애를 진하게 느끼게 했던 것과는 달리 ‘마이웨이’는 주인공의 희생적인 우정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약했던 것이다.

‘마이웨이’의 모티브는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던 곳에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이 서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SBS의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실화를 보고 강제규 감독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 징집→소련군 포로→독일군 포로→미군 포로’가 되었던 실존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에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우정을 픽션으로 집어넣어서 뜨거운 인간애까지 담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졌기에 ‘거대한 스케일과 함께 뜨거운 감동의 드라마’라고 홍보되었다, 타츠오(오기다리 조 분)와 김준식(장동건 분)의 마지막 씬에서는 눈물이 나오는 감성을 느낀 관객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대한 스케일은 있지만 뜨거운 감동은 없다’고 느낀 관객들이 많았다.

피해자로서 억울하게 당하고 일방적으로 고통 받은 한국인 김준식이 가해자인 일본인 타츠오를 용서하고 그는 오히려 불행하게 되는 것에 감동이 생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하던 부대에서 다른 한국인 도움으로 겨우 도망쳐 나오다가 부대를 구하겠다고 다시 되돌아가는 모습은 관객들을 몰입은커녕 영화 밖으로 밀어내고 말았다.

일본 놈들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던 판빙빙이 일본군 공격하는 소련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태도로 전환한 것도 억지스러웠다. 엄청난 숫자의 관객이 들기 바라며 만든 영화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했어야했다. 두 사람이 어릴 때 함께 달리기 한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용서하고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천사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납득키 어렵다. 용서와 화해의 장 안으로 감독만 들어가고 관객들은 멀찌감치 구경한 셈이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점으로서 지나치게 자주 화면이 흔들린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들도 있다. ‘태극기 휘날리면서’에서는 적절한 수준에서 흔들렸는데, ‘마이웨이’에서는 굳이 흔들리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장면까지도 너무 많이 흔들어 놓아서 영화를 보며 어지러웠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것도 감정 이입을 방해한 요소가 되었다. 정식 개봉 전 시사회 직후부터 혹평이 쏟아진 것도 흥행이 예상보다 크게 저조해진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한편 친일 성격의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일 성격의 영화라고 일부 네티즌들이 규정짓기도 했다. 개봉 전 온라인에 올라온 예고편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된 장면이 있었는데 영화배급사 측은 일본 현지에서 제작한 예고편을 배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로서 수정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예전에 ‘청연’이란 영화가 매우 잘 만든 영화임에도 주인공의 친일행적으로 입소문 돌면서 망한 사례도 있듯이, 일제 강점기 관련한 한국인 정서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현재의 독도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으므로 사전에 신중했어야했다. 대사에 한국말보다 일본말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피해자인 한국인 감성을 깊게 고려하지 않아서 일본 흥행을 위해 만든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었다.

한일 정상의 배우가 함께 출연하면서 일본 배우의 연기가 더 좋았다는 느낌에도 한국 관객은 자존심 상하였다. “장동건은 안 보이고 오다기리 조만 보였다”는 영화담당 기자의 촌평도 있었다. 오기다리 조는 전반부 광기 어린 표정에서 후반부 우수어린 눈빛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대배우임을 느끼게 해주었던 반면, 장동건은 인간적 고뇌와 갈등의 모습보다는 시종일관 바른 사나이의 평면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다.
 
차라리 조연인 김인권의 안똔 역할 연기에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이념도 국적도 상관없는 서민이 전쟁 속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김인권은 실감나게 표현하여 전쟁의 비극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영화 중심에 놓인 주인공의 연기가 흡입력이 적은 상태에서 조연의 연기만으로 영화가 좋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마이웨이'는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헐리웃 영화에 뒤지지 않는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작비가 745억원이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은 1605억원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몇분의 일의 제작비로 이 정도 영화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전쟁씬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극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CG가 더욱 발전했다는 점은 반갑다. 하지만 외국영화 중에서도 전쟁씬은 훌륭했지만 인간에 대한 표현이 약하여 호응을 많이 받지 못한 영화들도 있다. 강제규 감독 스스로가 “전쟁영화가 아니라 휴먼드라마”라며 “이제까지 연출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만족도가 높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려면 인물의 감정이 변해가는 과정에 관객도 함께 호흡하며 따라 오도록 이끌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또는 두 사람이 전쟁에서 만나기 전에 이미 끈끈한 우정을 가지게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휴먼스토리가 도입부에 충분히 있었더라도 김준식의 희생정신이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예 타츠오의 캐릭터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과 비슷한 유형으로 설정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2차대전 중 인건비 안들이고 유태인을 이용하며 돈 벌던 독일인 쉰들러가 양심에 눈을 뜨고 유태인을 도와주고 강제 노동수용소로부터 구해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최고의 호평을 받았을 뿐더러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비롯하여 7개 부문을 휩쓸었다.
 
‘마이웨이’의 일본인 타츠오도 독일인 쉰들러처럼 인간적 고뇌를 통해 변하여 스스로 한국인을 구하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다면 흡입력이 있었을 것이고 관객들도 용서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본 네티즌들의 재미없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일부 유명 감독들은 호평도 내놓았지만, 주로 전쟁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의 찬양이었고 휴먼드라마 측면의 언급은 아니었다. 이는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에서 벗어난 결과이다. 강제규 감독은 주제를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고 기술적인 부분이 세계적 수준이다.

다만 거액을 들여 흥행대박을 겨냥하는 휴머니즘적 대중영화에서는 관객의 정서와 소통하는 마음으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야한다. 앞으로의 차기작에서는 시나리오에 대해 여러 사람 의견을 청취하고 귀 기울이며 더욱 철저한 연구로 영화를 만들어서 스티븐 스필버그를 능가하는 감독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이웨이’가 비록 한국에서는 흥행이 예상보다 저조하여도 외국에서는 좋은 성적 올리기를 기대한다.

(첨언 : 영화 끝나고 나오는 노래 ‘To find my way‘는 이동준 음악감독이 작곡하였고 클래식과 팝을 오가는 세계적인 테너 Andrea Bocelli가 부른 곡이다. 이 멋진 곡을 관객들은 듣지 않고 바쁘게 상영관을 나갔다. 불이 들어올 때까지 필자 혼자 남아서 곡을 감상하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여운의 감동을 좀 더 만들어내는 것도 영화 관람료 지불한 것의 효과를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