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시장 만년 2위 LG생활건강이 1위 아모레퍼시픽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어림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실적 부진을 보이며 주춤하는 사이, LG생건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최근 일본 화장품 업체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LG생건을 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무서운 상승세로 업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것은 화장품 분야 뿐만이 아니다.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피존을 뒤엎고 섬유유연제 샤프란이 1위에 올라섰으며, 음료분야 역시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그 결과 2011년 LG생건이 발표한 연간실적은 매출 3조4524억원, 영업이익 4008억원. 이는 전년 대비 각각 22.1%, 15.6% 증가한 역대 최대 실적이다.


높은 실적은 그룹을 이끌어 온 수장의 파격 승진으로 이어졌다. 2005년부터 LG생건을 이끌어 온 차석용 사장이 지난해 11월 부회장으로 선임된 것. LG생건에서 민간 출신 외부 영입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전자 등 실적부진에 빠져있는 계열사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이끌어가고 있는 '차석용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사진=뉴시스)
◆M&A 도사, "또 먹었어?"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엔 벌을 주겠다." 

차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변화'다. 뉴욕주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 MBA 과정을 마친 차 부회장은 2005년 LG생건의 수장을 맡기 전까지 한국P&G, 해태제과 등 국내외 업체들의 CEO를 두루 거쳤다. '변화'와 '창의력'을 중시하는 차 부회장 특유의 경영 스타일은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LG생건 직원들은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차 부회장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를 하고, 주어진 시간에 성과를 내기만 한다면 '칼퇴'를 해도 전혀 눈치 볼 일이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방적인 사내 분위기보다 변화에 두려움 없는 그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간의 거침없는 M&A 행보다.

지난 2007년 말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2009년 다이아몬드 샘물, 2010년 더페이스샵과 한국음료, 2011년 해태음료, 2012년 보브 화장품과 일본 화장품업체 긴자 스테파니까지. 그야말로 그의 M&A행보는 거침없다. 무리한 투자에 우려를 표하는 외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각 사업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코카콜라를 사들이며 LG생건에 음료사업부문을 새롭게 추가한 그는 M&A 1년 만에 코카콜라를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화장품 분야에서도 중저가 시장을 타깃으로 한 더페이스샵과 색조화장품전문 업체인 보브로 진용을 새롭게 갖췄다. 최근에는 새로운 날개를 하나 더 장착했다.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 스테파니 코스메틱스를 인수, 41조원 규모의 일본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국내 업체가 해외 화장품 제조·유통업체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국내 화장품 시장을 넘어서서 글로벌 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격적인 M&A를 거듭하며 차 부회장이 이처럼 음료와 화장품 사업 부문을 키우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그동안 LG생건의 주요 매출을 담당했던 생활용품 분야 외에 화장품과 음료사업부문을 키움으로써 사업분야별 보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여름에 약한 화장품사업과 여름이 성수기인 음료사업이 서로의 계절 리스크를 상쇄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확보하는 식이다.

차 부회장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지점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1:1:1을 가장 바람직한 사업구조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구본무 LG 회장(왼쪽)이 김반석 LG화학 부회장(가운데),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오른쪽) 등 LG최고경영진들과 토론하고 있는 모습.
◆전사업 매출 1조원, 이제는 '전 사업 1등'이 목표

그의 구상처럼 생활용품과 화장품, 음료사업을 3대 축으로 탄탄히 자리잡은 LG생건은 지난해 '전 사업부 연매출 1조 시대'를 여는 데 성공했다. 기존사업과 신규사업이 균형을 이루며 성장하는 데 주력한 결과다.

생활용품사업 분야에서만 기존 엘라스틴, 테크, 페리오에 이어 섬유유연제 샤프란과 생리대 바디피트까지 1000억원 이상의 메가 브랜드 5개를 확보했다. 시장점유율 또한 32%에서 34%로 늘리며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화장품사업 역시 발효화장품 '숨'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매출 성장세를 견인한 데 이어 허브화장품 '빌리프' 등 다양한 신규라인으로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페이스샵은 브랜드숍 최초로 연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하며 브랜드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색조화장품 보브의 인수 역시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처음으로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어선 음료사업분야는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는 코카콜라음료에 해태음료의 매출을 추가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냈다. 특히 해태음료는 과도한 유통재고 정비 등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매출이 전년대비 17.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원부서 통합운영 등의 경영합리화를 통해 효율성 증대를 추구, 인수 당시 429억원 적자에서 벗어나 2010년 인수 첫해 15억원 흑자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차 부회장이 2012년 시작과 동시에 밝힌 목표는 '전 사업분야 1위'. 생활용품 분야에서 1위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만년 2위였던 화장품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과 제대로 선두 싸움을 벌이겠다는 자신감이다.

음료사업 분야 역시 해태음료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코카콜라음료와의 시너지를 극대화 해, 1등을 위한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세계화 전략을 통한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 또한 목표로 내걸었다. '일본에 또 하나의 LG생건을 만들겠다'는 긴자 스테파니의 인수는 그 징검다리가 되는 셈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한다는 차 부회장의 '공격 경영'이 LG생건을 어디까지 성장시킬지 업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