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태양공인의 정지심 대표는 새학기를 앞두고 달라진 현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름에 비해 이동이 적은 겨울방학 시즌이지만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에 따르면 매년 방학 시즌이면 대치동 일대 전세 문의가 줄을 이었지만 올해는 잠잠했다. 그나마 2월 초 들어 조금씩 문의가 살아나기는 하지만 예년만 못하다. 한달 정도 늦은 반응이라는 평가다.
◆전통 학군 수요 약해졌다
전세 대란을 주도했던 학군 수요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우선 2010년부터 적용된 고교선택제의 영향이 크다. 서울지역에 적용되고 있는 고교선택제는 △서울 전 지역에서 2개 학교 선택(1단계) △거주지 학교군 내 2개 학교 선택(2단계) △통합학교군 내 강제 배정(3단계)으로 학생을 충원하는 제도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올 겨울 학군 수요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면서 “강남에 살지 않더라도 강남 등 우수 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고교선택제가 실시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의 2010학년도 서울 25개 자치구의 초·중학생 전출입비율을 보면 강남·서초·송파·양천·노원·강동 등 6개 교육특구의 하향세가 나타난다. 강남구의 경우 전입학생은 672명(2009학년도)에서 412명(2010학년도)으로 줄어들었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의 난이도가 예년보다 쉬웠다는 점도 학군 수요가 움직이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흔히 이야기하는 ‘물 수능’ 효과다.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학군 수요가 움직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이번 수능이 쉬웠다는 점”이라며 “수능이 쉬운 만큼 좋은 학군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수요자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EBS 강의나 유명 인터넷 강의의 발달도 지역 벽을 허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굳이 교육특구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학군 수요를 붙잡는 이유다.
매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앞두고 학부형들은 자녀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사랑이 어느나라 못지 않다.(사진=뉴스1 송원영 기자)
최근 진행된 전세가 상승도 학군 수요의 발목을 잡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임 팀장은 “최근 2~3년간 전세가 상승으로 우수 학군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우수 학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힘들다보니 대체학군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초·중 혁신학교, 신흥 우수학군으로 부상
그렇다고 학군 수요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어나 과학, 예능을 특화한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은 높은 편이다. 혁신학교는 국립학교의 교육비로 사립학교의 교육을 받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학군수요를 이끌던 고등학교 주변이 한 풀 꺾인 대신 초·중학교 주변이 학군 수요를 주도하는 셈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혁신학교 지정 후 주변 아파트 전세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판교에 위치한 보평초·중고 주변이다. 보평초·중학교는 60~80분 단위로 수업을 진행하는 블록수업제와 1년을 4등분으로 나눈 4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인근 봇들마을 8단지와 백현마을이 학교 후광효과를 얻고 있는 아파트다. 전세 호가가 올라 ‘부르는 게 값’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한 구름산초등학교 역시 젊은 엄마들이 선호하는 혁신학교다. 토론방식의 커리큘럼에 학생 4명이 모여 토론하고 발표하는 방식의 수업으로 명성이 높다. 인근 광명 소하휴먼시아의 전세 수요가 풍부한 편이다.
고양시 행신동 서정초등학교도 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인기학교다. 한 학급당 20~25명의 스몰 클래스로 운영되고 있는데 역시 이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서정마을5단지의 입주 수요가 대기 상태다.
임 팀장은 “전통적인 학군 우수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전세 시세가 저렴하면서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평촌, 고양, 판교 등 신도시로 대체 학군 수요가 눈을 돌리고 있다”며 “교육이 특화된 혁신학교 주변으로 전세가격이 소폭 오름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혁신학교는 89개 학교이며 올 상반기 34개교가 추가될 계획이다.
◆맹모의 교육열, 쉽게 식지 않을 것
“10년 동안 거래했지만 유치원 때문에 이사한다는 고객은 처음 봤어요.”
강남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분당에서 왔다는 고객에게 월세 주택을 중개하면서 이사 사유가 자녀의 유치원 통원을 위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유치원은 영동 세브란스 병원 인근의 강남에서 유명한 영어유치원이다. 수업료만 월 132만원, 교재비와 식대, 기타 활동비를 포함하면 월 200만원이 넘는다. 이른바 황제 유치원이다.
시세를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학군 수요의 폭이 유치원 수요까지 넓어졌다는 점은 이채롭다. 실제 강남구 일대는 영어를 특화시킨 유치원이 상당수 들어섰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박보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월 교육비가 100만원 이상 드는 고액 영어유치원은 전국 47개 중 23곳이 강남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강남의 교육 특구에 대한 자존심과 연결된다. 게다가 현재 고교선택제에 대한 개편안도 논의 중이다. 잠시 주춤했던 학군 수요가 강남으로 다시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자문팀장은 “맹모들의 교육열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며 “고교선택제 결과에 따라 강남 등 우수학군의 수요가 다시 몰릴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서열화를 이유로 통합학군에서 순위 없이 배정하는 개편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월 경 확정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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