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총알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에 언 땅이 파이고 빗물이 스며든다. 빗물은 겨울이 뿌리내린 깊은 곳까지 스며 봄소식을 전한다. 견고한 겨울 땅이 부풀어 숨구멍을 틔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겨울 끝에 내린 비를 뒤로 하고 봄의 고향 강진으로 봄마중 나갔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 강물 흐르네 / 도처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 은결을 도도네 /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

 
◆영랑의 봄

봄을 맞는 일은 시인의 마음을 갖는 일이다. 눈길 두는 곳마다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새싹을 숨기고 있는 언 땅에도, 새순을 덮고 있는 마른나무 껍질에도 봄이 왔음을 느껴볼 일이다.


햇볕 반짝이는 진녹색 동백잎을 보고 있는 영랑의 가슴에 눈에 그리고 핏줄까지 동백잎 푸른 물이 들었다. 엽록소를 타고 흐르는 녹색의 봄기운이 그의 마음까지 물들이고 드디어 물줄기 하나 만들어 넓은 강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동백잎이 그가 되고 그 또한 동백잎이 되는 순간 그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란 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봄을 노래한 영랑이 있어 강진은 봄의 고향이 됐다. 내가 거기 있지 않아도 항상 마음 푸근하게 만드는 게 ‘고향’ 아닌가. 강진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항상 봄이 서려 있는 곳이다. 강진을 찾은 첫날 영랑의 집에서 봄을 마중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같이

영랑은 1903년 1월 이곳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김윤식이며 영랑은 아호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시를 썼던 김영랑의 시심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영랑의 집은 사람에게 시인의 마음을 선물한다. 돌담 이어진 길을 따라 그윽한 햇살 받으며 걷는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햇살이 살갗에 내려앉는다. 나른한 오후의 산책길에 욕심 없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강진만 비릿한 바다냄새에 땅위의 풋내를 안은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영랑생가
벌써 찾아온 봄기운이 넓은 뜰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장독대에 우물가에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에 봄이 숨어있다. 사뿐 걷는 걸음에 마음도 환해진다. 뜰 안의 은행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영랑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심은 나무다. 나무를 심으며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무슨 말을 했을까.


순간 고향집 감나무가 생각났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뜰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살아나지 못할 것 같던 감나무에 첫 감이 열리던 해에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됐다. 해마다 가을이면 감을 여는 고향집 감나무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 된 셈이다. 아버지는 감빛에 물이 올라 환한 등불처럼 빛나면 전화를 하신다. 나무에 달린 감을 아이들이 제 손으로 따보게 하려는 생각이셨다.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고향집에서 우리를 먼저 반기는 것은 주렁주렁 감을 매단 마당의 감나무였다. 아버지는 손자를 안고 감이 달린 가지까지 올려준다. 할아버지 품에 안긴 아이는 세상에서 처음 제 손으로 가을을 머금은 열매를 딴 것이다. 단풍잎 같은 작은 손 한가득 아이는 가을을 안고 있었다.

영랑의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린 영랑에게 철마다 변하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선물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이 집을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세월이 흘렀고 영랑의 시심이 봄 햇살처럼 풋풋한 이곳은 1993년에 복원했다. 샘과 장독대 감나무 모란 등이 여행자를 반긴다.

영랑의 은행나무 또한 지붕 낮은 한옥의 용마루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랐다. 메마른 껍질 속에 봄을 숨기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영랑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무 옆에 앉았다. 마당 가운데로 놓인 돌길로 영랑이 발걸음을 놓았을 것이다. 나의 시선도 그의 발걸음을 쫓는다.  
 
◆봄을 보내고 기다리는 봄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 앞에 봄은 이렇게 왔다 간다. 찬란한 슬픔처럼. 어느 산천의 봄이 이토록 절절하단 말인가. 봄도 그냥 가지 못하고 영랑의 마당 앞에 매년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간다. 영랑 생가 마루에 앉아 본다. 고즈넉한 마당에 고인 그의 눈길을 떠올린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영랑의 눈길을 따라 돌담에 시선을 멈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고즈넉한 시골 하늘이 담장에 걸려 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맞으며 마음 고요히 가다듬으며 고운 봄길 위에 영랑은 서 있다.
 
◆유배지 다산초당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는 조선말 지식인 다산 정약용이 있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다산초당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다. 원래 다산초당은 초가였다. 1936년에 집이 허물어졌다.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옛 건물 터에 지금의 건물을 세운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다.

숲 그늘에 에워싸였다. 한적하다. 초당 근처에 동암이 있다. 다산유적보존회가 74년에 중건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또 그 주변에 천일각이 있다. 이곳은 정약용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그의 형 정약전을 그리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곳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정약용의 다산초당 근처 네곳을 일컬어 '다산사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정약용의 친필로 각인된 암석인 '정석', 마음의 근심을 걷어 내고자 차를 끓였다는 '반석', 차를 끓였던 샘물인 '약천', 연못 가운데 있는 '연지석가산' 등이 그것이다.

 

다산초당 오르는 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잇는 오솔길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숲 그늘 바람이 찼지만 조금 걸으니 등에 땀이 구른다. 초당으로 오르는 길에 정자 하나가 눈에 띈다. 정자에서 강진만 바다가 바라보인다. 바다 안개 때문인지 바다 빛이 흐릿하다. 정자에서 숨 한번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 다산초당이 나왔다. 그곳에는 정약용이 차를 끓여 마셨다던 청석도 있고, 다산초당 건물도 있지만 정작 정약용의 체취를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숲 속 한적한 곳에 있는 작은 집일 뿐이었다. 머물러 있는 집보다 움직이는 길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백련사 동백숲

 
그 숲속 오솔길 끝에서 백련사를 만났다. 백련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원래 이름은 만덕사였다. 백련사의 혜장스님과 다산초당의 정약용은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 약 1km 정도 되는 숲길을 걸어서 오가며 친분과 학문을 교류했다.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됐다. 약 7000여그루의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주변에 후박나무 차나무 등도 많다.

유배지 봄 길을 거닐었던 정약용 또한 백련사 동백숲에 한참을 서 있었으리라. 그 길을 거닐었던 영랑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 그들의 뒤를 쫓고 있는 여행자 또한 그곳에 서 있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를 탄다. 목포IC로 나와서 해남방면 18번 국도 - 2km - 강진읍 추도3거리(좌회전) - 완도방면 군도 2호선 - 7km - 다산초당. 백련사는 다산초당 가는 길에 나온다. 다산초당에 차를 세우고 백련사를 걸어갔다가 오면 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왕복 2km 정도 된다.
 
대중교통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에서 강진행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시30분, 9시30분, 11시20분, 오후 1시30분, 3시20분, 5시40분에 출발한다. 4시간50분 소요. 아니면 서울에서 광주까지 간 뒤 광주터미널에서 강진가는 차를 타도된다. 광주에서 강진 가는 버스는 많다.
영랑생가는 강진읍내에 있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린다.

강진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현지교통을 이용하려면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망호 행 군내버스를 타고 다산초당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하루에 10여 회 운행. 문의 : 강진버스터미널 061-434-2053.
 
<음식>  강진은 남도 한정식이 유명하다. 읍내에 한정식집이 몇곳 있다. 둥지식당(061-433-2080)은 4인 기준 한상에 6만원부터 시작한다.
 
<숙박>  읍내에 모텔이 있다. 다산초당 입구에 있는 다산명가(061-434-5252)는 온돌, 황토 민박집이다. 2인실/4인실/단체실 등이 있다. 2인실이 5만원이다. 2인실에 3명 정도는 잘 수 있다.
 
*다산초당, 백련사, 영랑생가 등은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