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돈권(54)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용불량자였다. 1997년 사업이 부도나면서 빚쟁이에 쫓기다 작년에서야 모든 빚을 청산했다. 무려 14년간의 고통이었다.
그간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 통장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힘겨웠던 과정속에서 수차례 죽음도 생각했다. 작은 경차 티코를 타고 시속 150km를 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봤다.
사진 류승희기자
◆대기업 입사 5년 만에 중소 무역회사 CEO로
1986년 당시 이돈권 씨는 '잘 나가는' 대기업 직원이었다.
29살이라는 나이에 동아그룹에 합격했고 입사 4년 만에 동부그룹으로 이직했다. 그리고 이듬해 중소 무역회사 CEO(최고경영자)로 스카우트돼 사장 타이틀까지 달았다.
당시 그가 CEO로 있던 곳은 음악 CD를 전문으로 수입하던 무역회사였다.
그러다 1993년에 그는 월급쟁이 사장직을 박차고 나와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30장 묶음 CD를 해외 제조사와 독점 계약해 본격적인 사업 발판을 마련했다. 50여명의 직원을 뽑고 묶음 CD를 개당 15만원에 수입해 50만원에 팔았다. 이중 10만원은 본사가 챙기고 나머지 25만원은 영업사원이 수당으로 챙기는 구조였다.
당시만 해도 개인사업의 시작이 고난의 씨앗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해외영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국내 유통구조를 몰랐다. 좋은 물건만 가져오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영업사원들은 CD를 팔면서 가격을 낮추는 이른바 덤핑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그가 수입한 제품의 시중가격은 30만원도 채 안 됐다.
결국 영업사원들은 수당이 낮아지자 하나둘 회사를 그만뒀다. 때마침 미국에서 흑인폭동까지 겹치면서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원가도 안되는 돈에 전 제품을 처분했다. 그리고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부도를 냈다. 당시 그의 빚은 4억원이 넘었다. 물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진 빚은 제외한 금액이다.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당시 모 중소기업에서 급여 300만원을 줄테니 오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금액으로는 빚의 이자도 내기 어려웠다. 최소 700만원 이상은 벌어야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질 수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다.
◆노하우 배우며 길거리 영업 전락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영업이었다. 실패를 했음에도 그가 사업하면서 배운 것은 영업사원의 수익구조였다. 50만원짜리 CD세트 한개를 팔면 영업사원에게는 절반이 떨어진다. 하루에 10개만 팔면 평균 매달 600만~700만원은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씨는 곧바로 자신의 직원이었던 영업사원들을 찾아가 영업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주위 사람들은 못할 것이라며 비웃었지만 이씨는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과 가족들을 위해서 이를 악물었다. 처음엔 동창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CD를 사주던 동창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취급품목을 CD보다 영업하기 쉬운 어린이 영어회화세트(비디오테이프)로 바꿨다.
"영어회화세트를 20개씩 들고 아무 회사나 들어갔습니다. 제가 무겁게 가져갈수록 빨리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해지기 때문이죠. 영업 방법도 달리 했어요. 가장 높은 층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들 책상 위에 샘플을 얹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또 올려놓고, 나중에 한번에 회수하는 방식이었죠. 고객들이 좀 더 여유롭게 확인하라는 의미였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서너개씩 팔리더니 언제부터인지 하루에 10~20개씩 팔리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밑바닥 영업으로 잘 벌때는 수백만원까지 손에 쥐었지만, 수입은 일정치가 않았다. 어떨 때는 빚의 이자를 내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이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흑염소를 팔고, 신문판촉도 하며 영업을 계속했다.
이씨는 가장 힘들었을 때가 몸이 아팠을 때라고 회고했다.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남들한테 물건을 파는 잡상인이라는 내 신세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2년엔 주경야독을 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론 그때도 그는 신용불량자였다.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하루에도 수차례씩 빚 독촉을 받으며 힘겹게 살았다.
그러다 2005년 정부가 신용불량자 구제책으로 캠코를 통해 '희망모아'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바로 신청했고 서류가 통과됐다. 그리고 더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됐다.
"캠코에 매달 14만원만 내면 아무 문제 없도록 제도를 마련해줬어요. 큰 부담이 없어 한번도 연체하지 않았고 작년 중순 금융기관의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은 캠코에서 연체를 하지 않으니 문화공연 티켓과 상품권 등 다양한 혜택을 주더라고요. 15장의 상품권을 받아 아내에게 반지를 사줬어요.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패물을 모두 팔았거든요. 반지를 받은 아내는 제 손을 꼭 부여잡고 펑펑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의 인생 1막2장은 작년 빚 탕감을 계기로 마무리 됐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통해 1막3장을 시작했다. 이씨는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준 것은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창피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히려 힘들거나 자신이 부끄러운 순간이 오면 한마디만 던지라고 조언했다.
"친구야, 나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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