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선 재건축 되길 기다리느니 팔고 나가고 싶은데 가격을 크게 낮춘 급매물이 아니면 팔리지도 않는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네요."

서울 강남을 대표하는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 77㎡(이하 전용면적)를 보유하고 있는 김형운(57·가명) 씨는 최근 같은 면적의 이 아파트가 8억원 이하에 팔렸다는 소식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몇년 전 만해도 11억원을 넘나들어 재건축만 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종합부동산세 폭탄도 견뎌왔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 값 하락세가 최근 말 그대로 추풍낙엽이다. 은마아파트는 물론 소형주택 확대 문제로 연일 시끄러운 개포주공 3단지 36㎡도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5억원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추풍낙엽' 강남3구 재건축 단지

서울시 부동산 정보광장 실거래가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거래된 은마아파트 77㎡의 신고가격은 7억9000만원으로 확인됐다. 은마아파트 실거래가격이 8억원 미만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8년 12월 7억500만원에 거래된 이후 3년만이다. 지난 2006년 11월 최고가 11억6000만원에 비해 30%가량 떨어진 수준이다.

개포주공 역시 서울시의 소형 비율 확대 방침에 직격탄을 맞았다. 개포주공 3단지 36㎡의 경우 지난 2일 5억45000만원에 계약됐다. 이는 실거래가격이 조사된 2009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2010년 1월 최고가 7억4500만원보다 27% 하락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연말 6억원선에 거래된 이후 올 1월 5억9000만원, 2월 5억5100만~5억8000만원 등으로 하락세를 보여 왔다. 특히 지난 2월7일 서울시가 재건축시 소형평형을 기존 소형가구수의 절반정도 확보하라고 권고한 것이 낙폭을 키웠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경기침체와 서울시의 재건축 소형확대 방침 등 악재로 인해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전용면적 77㎡의 가격이 8억원 아래로 떨어진 은마아파트 전경 ⓒ이명근 기자
서초구와 송파구 상황도 마찬가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84㎡는 지난달 초 17억500만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16억2000만원짜리 급매물도 등장한 상황이다. 지난해 1월 11억5800만원에 팔렸던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103㎡는 이달 초 9억675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1년새 2억원 가까이 가격이 빠진 것이다.

부동산업계는 이 같은 재건축 아파트값 약세가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데다 재건축·재개발 관련 정책 악재가 이어지면서 투자심리가 꺾였다는 분석이다.

개포주공1단지 인근 G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의 소형 비율 확대 방침이 나온 뒤 한달 만에 3000만원 가량 아파트값이 떨어졌다"며 "조합과 시가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추가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실5단지의 경우 3종 일반주거지로 묶여있는 상황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고층을 지으려면 준주거 또는 상업용도로 종 상향이 필요하지만 시가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다.

송파구 잠실동 J공인 관계자는 "재건축 추진이 불투명해지면서 지난해 11월 103㎡의 가격이 3년여만에 1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며 "이전에도 10억원 밑에서 시세가 형성된 적이 있었지만 바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엔 투자자들이 더 이상 재건축 아파트를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국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거세지고 있는 재건축 사업에 대한 공공성 강화 요구도 재건축 아파트값 약세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거래 활성화를 위한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와 DTI 규제 완화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금융 규제 완화 외에 시장의 불확실성을 먼저 해소시켜야 한다"며 "공방과 대립이 이어지면서 장기화된다면 거래 위축으로 인한 가격 약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동 재건축 "우리는 달라"…거래 늘고 일부 가격상승도

재건축 사업속도가 빠른 사업장의 경우 시장 악재로부터 조금 비켜난 분위기다. 송파구 둔촌주공의 경우 추가분담금이 거의 없고 종 상향 시 사업성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재건축시 기존 소형평형의 절반 소형 공급' 방침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주공저층1~4단지의 경우 60㎡ 이하가 전체 5930가구 중 1710가구에 달한다. 시 방침대로 기존 소형가구의 절반을 소형으로 계획할 경우 855가구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둔촌주공은 지난 2006년 정비계획(종 상향 반영이전)에서 소형주택을 884가구로 계획했다. 오히려 시의 가이드라인보다 329가구 더 많은 것이다. 종 상향이 되지 않더라도 소형평형은 사업시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둔촌주공 조합 측 설명이다.

둔촌동 H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2월 한달간 30여건의 거래가 성사됐고 이달에도 3건의 계약이 이뤄진 걸로 알고 있다"며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지난 연말 대비 1000만~2000만원정도 호가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강동구 고덕지구 상황도 유사하다. 고덕시영에 이어 연내 이주 예정인 주공 7단지, 4단지가 대부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상황이어서 재건축 정책변수에 덜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덕시영의 경우 이주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근 주공단지에 비해 수요가 많은 편이다. 다만 이에 못지않게 매도세도 많아 가격은 보합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고덕동 S공인 대표는 "다른 개포지구나 잠실 등에 비해 사업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시장이 안정적인 모습"이라며 "다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사업성이 예상보다 좋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매도세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 가격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