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 장기화에 정유주도 '허덕'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대표 정유주 주가는 이달 들어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SK이노베이션이 10% 가까이, S-oil은 7% 넘게 하락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승승장구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앞서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지난해 말 종가 14만2000원에서 지난달 22일 19만3500원까지 35% 이상 올랐다. S-oil도 지난해 말 10만원에서 지난달 초 14만원까지 상승했다.
이처럼 정유주 주가가 하락한 원인은 유가 상승세가 세달째 이어지면서 정유사의 정제마진이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원유 가격(국제유가)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정유사가 원유에서 정제해 판매하는 석유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르면서 마진이 줄었다는 얘기다.
그동안 유가가 오를 때 정유주 실적이 동반 상승했던 이유가 바로 이 정제마진 상승 때문이었다. 정유사들이 평소 재고 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고 있다가 유가가 오르면 가격 상승분을 재고 물량에 반영할 수 있었던 것도 유가 상승기 정유주가 강세를 보였던 이유로 꼽힌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관계가 유지되려면 유가 수입 가격과 석유 판매 가격이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 올라줘야 하는데 원유 가격이 석유 판매 가격 인상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오랫동안 빠르게 오르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해 말(105.3달러)보다 배럴당 18.9달러(17.9%) 올랐다. 지난달 23일 3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120달러대를 돌파한 이후 어느덧 130달러대까지 넘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중순까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던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도 2월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고유가 부담으로 석유 소비량까지 줄게 되면 정유사가 느끼는 원가 압박은 급격하게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유업계에서 매출액 대비 원가비중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대략 매출액의 90~95% 정도가 원유 구매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유사 관계자는 "해외유전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의 경우는 낫지만 그렇지 못한 정유사 입장에선 유가 상승으로 원유 구입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화학업체 감산 검토까지…주가도 줄곧 내리막
석유화학주 상황은 더 열악하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감산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가 오르면서 나프타(Naphtha:원유에서 정제 추출) 등 석유화학의 주원료 가격도 급등했지만 주력 제품인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톤당 1000달러를 밑돌던 나프타 가격은 지난달 1000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이달 들어 1100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 가격도 지난해 11월 중순 톤당 1575달러에서 최근 톤당 3600달러까지 뛰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마저 올해 성장률을 8%에서 7.5%로 하향 조정할 정도로 글로벌 경기가 불황에 빠지면서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원재료 가격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승연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나마 재고평가와 정제마진 호조 효과가 있는 정유주에 비해 석유화학주는 가격 전가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유가 급등의 피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에서 호남석유화학은 이달 들어 11.5%, LG화학은 7.9% 하락했다. 합성고무 의존도가 높은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들어 주가가 줄곧 내리막을 타면서 10% 가까이 주저앉은 상태다.
◆건설·조선주는 '어부지리'
가파른 유가 상승에 전통 수혜주인 정유업체마저 비틀거리고 있지만 의외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업종도 있다. 조선주와 건설주, 자원개발 관련주 등 원유를 대신할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그렇다. 유가가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이들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조선주의 경우 원유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수요가 늘면서 LNG선 수주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해상 천연가스 채굴 붐을 타고 부유식 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LNG-FPSO),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LNG FSRU) 등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호재다.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LNG FSRU를 수주한 현대중공업은 올 초 LNG-FPSO에 대한 국내 독자개발을 마무리 짓고 몇군데와 수주 계약을 진행 중이다. 이런 호재가 반영되면서 현대중공업 주가는 올해 들어 28.9% 올랐다.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성적이 좋은 현대건설(20.9%) 등 국내 대형 건설주 주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자원개발 관련주인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올해 들어 주가 상승률이 23.5%에 이른다. 이들 주가는 정유주 주가가 꺾이기 시작한 2월 이후에도 꾸준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강승민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으로 중동지역 국가가 정제, 화학 플랜트 관련 투자를 확대하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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