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내리던 4월25일 서울 코엑스 앞 영동대로변은 전국에서 몰려온 고속버스로 장사진을 이뤘다. 승객을 하차시키기 위해 주차한 고속버스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량이 맞물리면서 한동안 혼란을 빚기도 했다.

고속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교복을 입은 채 한껏 멋을 부린 고등학생 무리였다. 이들이 향한 곳은 코엑스 D홀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의 채용박람회 행사장. 현대·기아차에서 밝힌 행사 참석자 수는 약 5000명이다. 궂은 날씨 탓에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행사는 대기업이 부품협력사의 인재 채용을 위해 처음으로 박람회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현대·기아차의 부품협력사 300여사가 참가했으며 협력사의 채용규모는 상반기 3000여명, 올 한해 1만명 정도다. 현대·기아차 측은 이번 행사에 약 5만명의 청년 인재가 방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막식에서 이재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가 지역 인재를 찾아다니며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동종계열의 대기업 1차 협력사가 함께 실시한 채용박람회는 어떤 점이 다른지 현장을 들여다봤다.
 
사진 류승희기자
 
◆고졸은 오전반, 대졸은 오후반
채용박람회의 오전 분위기는 사실상 '교복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체로 참가한 고등학교 학생들로 시장을 방불케 했다. 통제가 안 되는 탓인지 여기저기서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자동차학과가 있는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모두 참여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기간이나 수학여행 중임에도 급히 일정을 변경해 참석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전후로는 행사장에 한산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오히려 행사장 바깥에 더 많은 고등학생들이 무리지어 있어 산만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최근 고졸 취업이 부각되면서 특성화고의 취업목표 비중이 60~70%로 높아졌다"면서 "하지만 취업보다 진학을 목표하고 있는 학생들까지 현장분위기 체험 명목으로 참여한 것이 산만해진 이유"라고 전했다.

오후가 되자 검정색 정장 차림의 대졸 구직자들의 비율이 높아졌다. 혼자 오거나 서너명 정도의 소수정예 그룹이 주를 이뤘다. 대졸 취업준비생이 많아지면서 한 화장품회사가 참여하고 있는 면접 이미지컨설팅 부스와 이력서·자기소개서 컨설팅 부스의 취업자 대기시간도 길어졌다.

상담건수가 많지 않았던 채용박람회 참여기업 인사담당자도 이때부터 바빠졌다. 개인에 대한 신상정보부터 급여와 복지수준 등 민감한 내용의 질문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떤 점이 다른가

현대·기아차는 총 부품의 95% 이상을 협력사에서 구매한다. 협력사가 우수인력을 유치하게 되면 그만큼 현대·기아차의 역량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협력사의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있는 이유다.

협력사 역시 이 같은 채용박람회를 환영하는 모습이다. 현대·기아차에 엔진과 오토 트랜스미션 관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삼보모터스의 박준영 이사는 "우수 인재들이 대기업 취업을 고집하다보니 중소기업에는 인재들이 잘 지원하지 않는다. 보통 헤드헌터를 통해 선별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지만 경력직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이번 박람회가 회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이자 능력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직원규모 450명에 연 18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회사임에도 3년 전에는 해외 바이어들과의 테크니컬 미팅시간 절반을 회사소개에 할애해야 했다"면서 "지금은 현대·기아차의 브랜드가 강화돼 회사소개 시간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달라진 위상을 소개했다. 현대·기아차의 협력사라는 네임벨류가 높아지면서 한층 영업하기 수월해졌다는 설명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이번 박람회가 남다르다는 점에 동의한다. 대여섯번의 채용박람회를 경험했다는 원주의 S대학교 졸업생 한병욱(29) 씨는 "이번 박람회는 자동차 협력사와 수도권·지방소재 기업의 채용이라는 점에서 기존 대기업이나 혹은 중소기업 등 규모별 채용박람회와 차별화됐다"며 "그동안 서울 내 회사의 취업만 고집했는데 조건이 맞는다면 눈높이를 낮춰 지방소재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외국기업은 구직자의 성실성이나 의지를 채용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 반면 국내기업은 학력과 전공에 여전히 많은 가치를 두고 있는 부분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좋은 인재 많이 모였나

이날 취업타로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곳은 이력서·자기소개서 컨설팅 부스다. 운영위원회와 더불어 가장 넓은 4개 부스를 사용하는 공간이다. 주로 대졸자나 졸업예정자의 참여가 많았다.

현장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달랐을까. 유연례 커리어 경력개발연구실 연구원은 "자신의 서류를 꼼꼼히 만들고 상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취업준비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서 "유독 진지한 취업준비생이 많았던 채용박람회"라고 평가했다.

심석화 커리어 공공관리팀장은 "인사담당자들이 운영위원회를 찾아와 채용정보를 다시 써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몇건 있었다"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력서를 보면서 능력과 역량이 뛰어난 취업준비생이 많은 것에 놀랐다. 소홀했던 정보공개가 후회된다는 식의 토로였다"고 전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여전히 많은 취업준비생이 취업에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자신을 홍보하고 회사의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임에도 수동적인 구직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적극적인 입사 의지가 인사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 연구원은 "인사담당자가 요구하지 않는 자기위주의 애정 없는 서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며 "입사지원 분야에 따라 맞춤형 자기소개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직 만족할만한 인재를 찾지 못했다는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박람회가 2~3회가량 지나야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좋은 인재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박람회가 아닌 대학별 채용설명회를 통한 적극적인 채용 지원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