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과연 아이들이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아이들이 가장 많이 걸어 본 게 오르막길이 없는 해변 도로 3km인데, 상당산성 성벽을 따라 오르내리며 걸어야 하는 4.3km 구간 그리고 이어지는 600m 마을길과 3.1km 도로 고갯길을 다 걷자면 8km 거리가 된다.

 

 

◆숲길에서 다시 태어난 아이들

드디어 걷기여행 출발지점인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 남문 앞 잔디광장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밭에서 주말 오후의 평온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돗자리를 펴고 잠자는 아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 다과를 즐기며 크게 웃는 아줌마들, 할아버지 모시고 삼대가 모인 자리도 있었고, 배드민턴을 치고 축구를 하며 넓은 들판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도 보기 좋았다.


상당산성 남문

그런 잔디광장을 지나 우리는 남문을 향해 걸었다. 남문을 통과하자 왼쪽으로 성벽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옆 숲에 오솔길도 보였다. 숲 그늘 좋은 오솔길과 전망 좋은 성벽길은 그렇게 나란히 이어진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잔디광장과 푸른 숲의 풍경에 마음도 싱그럽다.

약 500m 정도 걸었을까? 남암문이 나왔다. 그곳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 숨을 고르면서 올라온 길을 돌아봤다. 저 멀리 푸른 숲 사이에 숨은 듯 자리한 성벽길이 빠끔 보인다. 


성벽길
남암문을 지나면서 성벽길은 경사 심한 오르막 없이 넓고 편하다. 성벽길 바로 옆 숲속 오솔길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아이들은 오솔길과 성벽길을 오가며 장난을 친다. 숲속에 숨어서 성벽길로 걷고 있는데 “아빠”하고 부른다. 숨은 아이들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아이들이 “우리 여깄어!”라며 ‘깔깔깔’ 해맑게 웃는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더 싱그럽다. 숲에서 나온 아이들이 저 멀리 뛰어갔다 도로 달려온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떠있다. 높고 맑은 목소리로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재잘댄다. 웃음 그칠 줄 모르는 얼굴이 ‘햇님’ 같이 반짝인다. 그렇게 우리는 서문을 지나 북문이 있었던 자리에 도착했다. 북문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작은 쉼터가 있어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이제 반 정도 온 셈이다. 

남암문부터 서문을 지나 북문이 있었던 곳까지 이어지는 성벽길은 전망이 좋을 뿐 더러 길 자체가 예뻐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구간도 있다.

그 길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쪼르륵’ 달려가더니 “아빠 다람쥐다 다람쥐!”라며 부른다. 얼른 달려갔다. 줄무늬 다람쥐도 귀여웠지만 동그란 눈으로 다람쥐를 보며 웃는 아이들 모습이 더 귀여웠다.

다람쥐뿐만 아니었다. 왕개미, 나비, 거미, 작고 노란 꽃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숲에 사는 모든 생명을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마음을 다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고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자연을 온전하게 느끼는 이 길에서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앞서 걸었다. 처음보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걷는다.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데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이 마음에 그윽하게 들어찬다.

여유 있게 걸어 동문을 지나 상당산성 걷기여행의 종착점인 산성 마을 저수지에 도착했다. 아담하고 잔잔한 저수지 둘레를 걸은 뒤 마을도 한 바퀴 돌아봤다. 곳곳에 숨어 있는 옛집과 골목길이 운치 있다.
 


남문에서 출발해서 서문을 지나 동문

   
◆백제사람이 길 내고 조선시대에 돌로 성을 쌓다

상당산성을 처음 쌓은 때는 백제시대다. 청주시 자료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흙으로 성을 쌓았다. 그 이름도 백제시대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백제 사람들이 성을 쌓고 길을 만든 곳에 조선시대에 돌로 성벽을 구축했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인 1716년에 석축을 쌓아 개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역사를 품은 상당산성은 지난 1970년 10월 1일 사적 제212호로 지정됐다.
 
성벽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벽은 가파른 산비탈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 있으나 성벽 안에는 흙을 다져 평탄하게 길을 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성의 형태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상당산성은 성벽을 따라 이어진 4.3km의 길에서 청주시내 곳곳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성안 숲의 자연미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상당산성 성벽길은 ‘휴식 같은 걸음으로 행복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고향의 맛, 백숙

상당산성을 다 걸은 뒤에 산성마을 저수지 둘레를 걸으며 고즈넉한 옛 마을 분위기를 즐긴다.
 
사실 상당산성 마을은 오래전부터 닭백숙 요리와 청주의 특산물인 대추술을 팔던 곳이다. 성곽길을 다 걸은 뒤 산성마을에서 맛보는 ‘백숙과 대추술’은 필수코스다.
 
이 마을이 닭백숙 마을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70년대 이농현상으로 마을은 찬바람만 불었고, 나이 든 사람들만 살았다. 산성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마을을 개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산성 마을 사람들은 청주시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겠다며 음식점을 내겠다고 상신했다.

당시 허가 조건 중 하나가 음식업과 함께 숙박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성마을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한옥에서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한옥체험의 장’을 열어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숙박업은 기대했던 것보다 수익이 많지 않았고 일은 일대로 많았다. 그래서 숙박업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아직도 음식점 이름에 ‘~장’이라는 여관식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산성마을 음식점들이 닭백숙을 시작한 건 1990년 전후다. 초창기부터 산성마을 닭백숙이 유명해진 이유는 손님이 주문하면 닭을 잡아서 요리를 하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미리 닭을 잡아 식당에서 계속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조리기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압력밥솥이다.

닭과 쌀주머니를 함께 넣고 삶는다. 이 때 오가피, 황기, 계피, 밤, 대추 등 10가지 재료가 함께 들어간다. 이렇게 한 솥에서 들끓으면서 각각의 요리재료가 제향과 영양을 내뿜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면서 내맛 네맛이 아닌 ‘산성마을 닭백숙 맛’을 완성하는 것이다.
   
압력밥솥에서 완전히 요리된 닭백숙을 전골냄비에 담아 내온다. 먹다 식으면 데워 먹는다. 닭백숙을 먹다보면 한약재와 닭을 함께 삶은 국물에 쌀과 찹쌀, 당근 등을 넣은 영양죽이 나온다. 산성마을 닭백숙과 그 맛이 어우러지는 대추술 또한 잊지 말기를.
 
◆구불거리는 산길 옛 도로를 걷다

산성마을에서 백숙요리를 맛 본 뒤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백숙요리를 맛보며 충분히 쉰 다음에 산성마을에서 명암약수터 앞까지 이어지는 3.1km 옛 도로를 걸어볼만 하다.
 
상당산성 걷기여행의 출발점인 남문 앞 잔디광장을 지나 산성입구까지 걸어간다. 새로 난 도로(터널이 있는 도로) 옆 길이 옛 도로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구불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도로가 나온다. 옛날 청주 시내에서 산성을 오가던 고갯길이다. 지금도 구불거리는 고갯길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이 길로 산성까지 오간다. 길 주변에 숲이 우거져 새로 난 도로보다 훨씬 운치 있다.
 
산성 마을 저수지에서 청주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있기는 한데 평일이면 약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되므로 차 시간이 안 맞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명암약수터 앞에서는 청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비교적 자주 있다. 산성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싫다면 걸어서 명암약수터까지 간 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버스를 놓친 우리는 걷기로 했다. 아이들은 아직도 ‘쌩쌩’하다. 해 기운 저녁 길은 선선했다. 어둠이 서서히 길을 내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함께 한 가족이 지금 내 곁에 있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 청주IC - 청주 시내 방향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 터미널 사거리에서 직진 - 청주대교 지나 상당사거리에서 우회전 - 도청사거리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 - 계속 진진 - 산성터널 빠져 나와서 상당산성 방향 좌회전 - 남문 잔디광장 앞 주차장에 주차


대중교통 :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호남선(센트럴시티), 남부터미널 등에서 청주 가는 버스를 탄다.

현지교통 : 청주에 도착한 뒤 고속터미널 혹은 시외버스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청주 시내로 들어간다. 도청 앞 정류장에서 내려서 산성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는 약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한다(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낮 시간에 5대 정도 증차된다). 종점 바로 전인 산성 남문 잔디광장 앞에서 내려서 잔디광장을 가로 질러 남문으로 들어가서 걷기 여행을 시작한다(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남문 잔디광장 앞까지 택시비가 약 1만5000원 안팎으로 나온다).


산성 성곽길을 다 걷고 백숙 요리도 맛 본 뒤 나오는 길, 산성마을 종점에서 시내로 나오는 시내버스 차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면 약 3.1km 정도 옛 도로를 걸어서 명암약수터까지 가는 것도 괜찮다. 그 도로를 걷다보면 구불거리는 아스팔트 고갯길이 나오는데 숲이 우거져 운치도 있다. 명암약수터 앞에서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음식>
산성 성곽길을 다 걸은 뒤에 산성마을에서 파는 닭요리, 오리요리 등을 즐긴다.

<숙박>
청주는 유명한 여행지가 없어서 펜션이나 휴양림 등 자연적이고 안락한 숙박시설이 없다. 가경동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모텔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주변여행지>

명암약수터 아래 청주국립박물관, 나비생태전시관, 청주동물원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