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전 지금의 조동마을을 지나가던 노승이 “이곳에 소나무 두그루를 심고 마을을 이뤄 살면 평안하겠다” 하여 생긴 마을이 조동마을이다. 지금도 그 소나무 중 한그루가 마을에 남아 있다. 그래서였을까. 범죄 없는 마을로도 선정되고 마을 사람들 인심 또한 넉넉하다. 돌담 아래 피어난 민들레홀씨도 정겹다.
 
영동에서 도마령을 넘는 방법은 두개다. 영동읍에서 무주 쪽으로 가다가 양강면을 지나 용화면을 거쳐 조동리로 가는 길이 있고, 4번 도로를 타고 추풍령·김천 쪽으로 가다가 49번 도로를 만나 무주·용화 방향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약간의 거리 차이는 있지만 두길 모두 영동읍에서 30km가 넘는다.
 
우리는 두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북에서 남으로 도마령 고개를 넘어 불당골, 상촌, 조동마을을 차례로 둘러본 뒤 용화면을 거쳐 도덕재를 지나 영동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도마령 고갯마루에 차를 세웠다. 왔던 길과 가야 할 길이 고개 양쪽으로 나누어졌다. 길은 녹음을 뚫고 살아 있는 듯 구불거리며 산을 내려간다. 사람이 살 것 같은 땅이 보이지 않는다. 다 산이고 숲이다. 저 멀리에는 산줄기가 파도처럼 밀려오거나 밀려간다. 산이 바다 같다. 
 

상촌마을에서 나와 조동리로 가는 길목 풍경
 
고갯길 위에 ‘상용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산불감시초소 같은 게 있는데 그곳에 서니 불당골이 눈 아래 밟힌다. 도마령 고개 아래 첫 마을이다. 그 아래가 상촌이고 다음이 조동이다. 상촌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아주 멀리 녹음에 파묻힌 작은 마을 ‘조동’이 보인다.
 
◆말을 키우던 마을, 혹은 칼 찬 장수가 말 타고 넘던 고개
 
고갯길 오른쪽은 940m가 넘는 천만산이고 왼쪽에는 1200m에 가까운 각호산이 자리 잡았다. 천만산 아래는 천마령이, 각호산 아래는 민주지산이 이어진다. 그 사이를 비집고 산을 넘는 길이 바로 ‘도마령’이다. 길은 황간과 무주를 잇는다.
 
지금이야 찻길이 뚫려 편하게 고개를 넘을 수 있지만 찻길이 없을 때는 그저 산을 넘는 고갯길이었다. 도마령 정상에 있는 정자 ‘상용정’의 높이가 840m 정도 되니까 그나마 이 부근 산줄기 가운데 이곳이 가장 낮은 곳이다. 그러니 길이 이쪽으로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촌에서 용화 지나 무주로 넘어가는 49번 도로 도마령
도마령을 넘어 용화를 지나 설천으로 가면 나제통문이다. 경상·전라·충청도가 모인다는 삼도봉도 민주지산 아래에 있다. 그러니 도마령을 넘는 그 길은 예나 지금이나 삼도가 모이는 접경지대였던 것이다. 더 오래 전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래서일까. 이 주변 지명에는 특별히 군대와 관련된 것이 많다. ‘도마령’ 자체가 ‘말을 키우는 마을’ 또는 ‘칼을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던 고개’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또 고개 옆 ‘천만산’과 ‘천마령’ 부근에는 옛 성터가 남아 있고 능선 주변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그곳은 군대에 쓰일 말을 조련하던 터였다. 당시 말 천마리를 키웠다고 해서 ‘천만산’ ‘천마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마령에서 오를 수 있는 ‘각호산’은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호랑이 자체도 위협적인 존재인데 거기에 뿔까지 달렸다 하니 그 전설의 생명체가 갖춘 위용이 어떠했을까. 다르게 생각하면 아마도 용맹한 장수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적들에게 심리적인 위압을 가하려는 어느 나라의 계략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국경지대의 준엄함과 비장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도마령과 그 주변 산들에 내려오는 전설 속에는 장수와 군대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었고 조선시대까지 이곳은 전쟁을 준비하던 군사 훈련장이자 군대 주둔지였다.
 
도마령에서 상촌까지 4km 정도 되는 거리를 내려왔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조심조심 달렸다. 상촌마을 입구에 ‘민주지산자연휴양림’ 표지판이 서 있다. 이제야 사람이 살 것 같은 마을이 나온 것이다. 
 
 
 

민주지산자연휴양림 입구에 서있는 장승                          상촌마을 풍경
◆시간이 멈춘 마을 상촌 사람들
 
민주지산자연휴양림은 숲속 통나무집과 작은 계곡, 민주지산 등산로, 임도 등이 있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민주지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짧은 거리의 등산로가 이곳부터 시작된다. 굳이 정상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임도나 산책로를 걸으며 삼림욕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숲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계곡으로 내려온다.

일행의 차를 보내고 걷기 시작했다. 휴양림에서 돌아 나와 상촌마을에 도착했다. 이른 더위가 목을 말린다. 상촌마을 슈퍼 앞 평상에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모여 있다. 그늘에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물 한모금 마시려 생수를 샀다. 옆에 아저씨가 “이런 데 와서는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제 맛”이란다. 슈퍼 아줌마는 평상에 앉아 땀 좀 말리라신다. 친절한 그들의 말이 고마웠다. 배낭을 벗고 바람에 땀을 식히며 아저씨 말처럼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땀이 마르고 달아오른 몸이 식었다.
 
아저씨 말로는 이 동네에 열가구가 산다. 다른 시골마을도 마찬가지지만 노인들만 사는데 주말에는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손자들 데리고 와서 그나마 북적댄다. 옛날에는 지금 휴양림이 있던 그 위 골짜기에도 농사지으며 사람들이 살았다. 골짜기마다 햇볕 드는 땅 한줌만 있어도 논이며 밭으로 일궜다. 돌산에 험한 산세 때문에 논밭 일구기도 쉽지 않았지만 북적거리며 살았던 옛날이 그립단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아볼 골목도 몇개 없다. 산 밑에 붙어있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도랑이 흐르고 그 옆에 나무가 자라 집을 뒤덮었다. 지붕 낮은 집은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웅크리고 있다. 그런 풍경을 보면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도랑에서 아이들이 논다. 할아버지 집에 놀러온 서울 아이들이다. 고향집 할아버지를 찾아 자연 속에서 뛰어놀 수 있는 저런 아이들은 행운이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 작은 교회당이 보인다. 종탑에 매달린 종에 녹이 슬었다.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흙냄새 풀향기 따라 밭길을 걷는데 멀리 동네 아줌마들이 들일을 한다. 웅크리고 앉아 손질을 멈추지 않는다. 아지랑이가 피어나 아줌마들이 아른거린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들판 풀길을 따라 조동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동리 집과 돌담
 
◆오백년 넘은 소나무가 지켜 주는 조동마을
 
점심도 거른 채 고갯길·산길을 지나 마을로 돌아다녔다. 조동마을에 도착했는데 식당이 없다. 슈퍼 유리문에 ‘간단한 식사, 라면, 국수’라고 적혀 있다. 물어보니 라면만 된단다. 아! 이런 산골마을에 와서 산나물에 된장찌개 한그릇 못 먹고 라면이라니…. 라면을 시켜 놓고 있는데 마을 아저씨 두분이 슈퍼 식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소주를 시키신다. 슈퍼 아줌마는 엊그제 경로잔치 하고 남은 음식이라며 안주로 낸다. 그래봐야 종지에 담긴 김치와 젓갈, 고기 몇점이 다다.
 
잔을 비우신 아저씨가 “어디서 왔댜?”고 물으신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멀리서 여까지 뭐 볼게 있다구 왔냐신다. “도마령 구경 왔다”고 하니까 “어찌 도마령을 아냐”신다. 아저씨는 말씀을 이으셨다. “일본놈들이 있었을 때는 도마령하구 조동마을 인근에 금광이 세곳이나 있었어. 금광을 관리하던 사무실이 저기 저 뒷산께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거기를 ‘사무실’이라고 불러.” 옆에 있던 아저씨도 말을 돕는다. “며느리한테 사무실 같다 올게”라고 했더니 며느리가 이상하게 보더라나. 그래서 그때 며느리에게 ‘사무실’에 얽힌 얘기를 해줬다. 서너잔 씩 나눠 드신 아저씨 두분이 자리를 일어서시면서 하시는 말씀, “일본놈들이 금은 다 캐가고 굴만 남겨놨어.” 전국을 여행하다 보니 일제강점기 때 금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듣는다. 우리나라 금이란 금은 그때 다 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대문이 있어야 할 곳에 문이 없다. 담이 이어지다 뚫린 곳이 문이다. 푸근하게 퍼지는 햇살이 흙벽에 기울어진다. 오후의 햇살이 황토색으로 빛난다. 슬레이트지붕을 나무기둥이 힘겹게 받치고 있다. 그 기둥에 하얀 편지함이 매달려 있다. 누구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득한 기다림이 오래된 집 마당에 늙은 햇볕처럼 고인다.
 
골목길을 돌아드니 돌담 아래 민들레홀씨가 무리지어 피었다. 꽃처럼 피어난 홀씨로 퍼진 민들레 세상, 들풀처럼 질기게 살아가는 그 생명의 수고로움도 다 잊고 나는 그저 햇볕 고인 돌담 아래 뽀얀 민들레홀씨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작은 생명의 모습이 이처럼 신비스러울 때가 없었다.
 
돌담 앞 공터에 느슨한 빨랫줄이 허공을 가르고 있다. 텅 빈 빨랫줄에 빨래집게 몇개가 매달렸다. 땀과 흙먼지 묻은 누군가의 노동과 생활의 흔적이 햇볕 아래 널려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빨랫줄이 팽팽해진다. 긴장감이 돈다.     
 
개 짖는 소리가 ‘컹컹’거리며 마을을 울린다. 뒷길을 돌아 나와 5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소나무는 옛날 초등학교 건물 뒤에 있었다. 조동마을 사람들은 매년 1월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올린다.
 
교정의 푸른 잔디와 플라타너스 푸른 잎이 500년 소나무의 품에서 새싹처럼 자라고 있다.


[여행정보]

<길안내>자가용
*대진고속도로 : 무주I.C 우회전(영동·설천방면) → 오산삼거리(성주·설천방면) → 무항삼거리(용화방면) → 용화삼거리(황간·상촌방면)→조동리. 상촌리(민주지산자연휴양림) - 도마령
*경부고속도로 : 황간I.C로 나와 좌회전 → 신탄리삼거리(경남주유소 앞 좌회전) → 돈대삼거리(우회전) → 상촌삼거리(무주·용화방면) → 하도대삼거리(무주·용화방면) → 도마령 → 상촌리(민주지산자연휴양림), 조동리
 
대중교통
*서울역에서 영동역까지 기차 수시 운행. 영동역에 도착해서 조동리 가는 시내버스 이용(06:30  10:20  13:20  17:20 등 하루 4대 운행). 시내버스 문의 : 동일버스 043-742-3971. 
*동서울터미널에서 영동 가는 버스 이용(오전8시, 오전10시, 오후2시. 오후 3시10분. 오후6시. 2시간 40분 정도 소요) 영동 도착 후 조동리 가는 시내버스 이용.

<숙박>
민주지산자연휴양림(취사도구 다 있음) 숙박시설 이용. 인터넷 예약. 문의 : 043-740-3437 
조동리에 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음식>
조동리, 상촌리 일대에는 본격적인 식당이 없다. 조동리에 있는 슈퍼에서 라면 정도 판다(조동리 버스정류장 아래 슈퍼집의 경우에 민박을 할 경우에 미리 밥을 해달라고 하면 1끼에 1인당 5000원 씩 받고 해준다). 상촌리 마을 초입에 식사와 민박을 하는 집이 한 곳 있다.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서 휴양림에서 1박 하는 게 좋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