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대 규모인 만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직접 이라크로 날아갔다. 김 회장은 "비스마야 신도시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새 희망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따뜻한 동반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10만호 건설사업 본 계약 체결식 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승연 회장과 말리키 총리
◆두달마다 4000가구 아파트 완공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의 1830ha(550만평) 부지에 분당급 규모의 신도시를 개발하는 공사다. 이 프로젝트는 도로, 상·하수관로를 포함한 신도시 조성공사와 10만호 국민주택 건설공사로 나뉜다.
공사기간은 7년, 공사대금은 77억5000만달러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공사금액 증액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실제 총 공사대금은 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선수금은 25%로 약 194억달러에 이른다.
한화건설은 빠른 시간 내에 시공을 마치기 위해 10만호 주택건설과 단지조성공사를 동시에 진행한다. 이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 PC(Precast Concrete)공법이다. PC공법은 건축물의 기둥, 보, 벽과 같은 부자재들을 공장에서 제작한 후 공사현장으로 운반해 설치하는 건설공법이다.
공기단축은 물론 경제성과 품질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공법으로 과거 국내 건설업체가 리비아 주택건설공사 등을 PC공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가 있다. 한화건설은 이번 공사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이 공법을 통해 두달에 한번씩 잠실 3단지(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게 된다.
이를 위해 공사부지 주변에 세계 최대 규모의 PC공장을 우선 건설한다. 약 1700여명이 일하게 되는 이 공장에서는 매일 80가구, 연간 2만가구에 해당하는 슬래브와 벽체를 생산하게 된다. 하루에 사용되는 콘크리트 양은 6400톤으로 이는 레미콘 430대에 이른다.
◆첫삽 떴지만 우려도 상존
한화건설은 이미 지난해 5월 이라크 비스마야 지역의 신도시 조성공사를 수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계약은 합의각서인 MOA 수준이었다. MOA는 양해각서인 MOU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구속력도 약하다.
때문에 본계약 체결이 절실했던 상황.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해 8월과 11월 등 본계약 예정일이 몇차례 연기되면서다. 증권가에서는 한화의 이라크 수주 실패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본계약 체결이 성사된데는 김현중 한화건설 해외담당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누리 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비롯해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를 설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라크에 상주하면서 20여차례의 계약조건 변경과 협의를 주도했다.
그가 총리 수행원을 헬리콥터에 태우고 인천 에코메트로 상공을 비행하며 청사진을 제시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천 에코메트로는 한화건설이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1만2000가구를 짓는 국내 최대 도시개발사업이다.
한화건설은 이번 공사를 계기로 이라크 내에 추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향후 전개되는 이라크 100만호 주택건설 사업과 철도·항만·도로 등 기간산업 건설, 또 발전소·정유공장·석유화학공장 등 생산설비 입찰과 태양광을 활용한 발전설비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한화지만 여전히 위험성은 존재한다. 이라크의 정치적 상황이나 재원마련에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로 23명이 사망하는 등 치안상태도 여전히 불안하다.
정치상황이나 치안이 불안하면 계약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일례로 역대 최고가 수주로 관심을 모았던 STX의 가나 20만가구 주택건설사업이 가나 정부의 정치적 문제로 현재 중단된 것이 대표적이다. 가나 프로젝트는 현지 법인장의 공금횡령 및 공문서 위조 등 불법행위가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조감도
◆목숨 걸고 하는 이라크 프로젝트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김승연 회장을 두고 흔히 '재계의 승부사'라고 부른다. 20대에 그룹 총수직을 수행하면서 대한생명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라는 과오도 그의 이러한 성품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요즘 김 회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승부사적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목숨 걸고'라는 말이다. 한화-두산의 프로야구 경기가 있던 5월16일, 잠실야구장에서 한화 선수단을 찾아 "프로라면 목숨을 걸고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는 자세로 임하라"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평소 학벌보다 신용과 의리를 강조하는 김 회장은 "인간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또다시 '목숨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이라크 신도시 건설사업 기공식에 참여한 후 소회에서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가느냐고 말렸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탄조끼도 입지 않고 현지로 갔다. 나와 한화그룹이 목숨 걸고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정신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했던 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화그룹이 이라크 신도시 건설 사업을 바라보는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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