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과도한 국가부채로 유로존은 물론 세계 전체의 골칫거리로 전락했지만 이와 별도로 그리스음식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세계 거의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뉴욕 맨해튼에서도 지중해식 레스토랑, 그리스식당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스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올리브오일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채소, 허브, 곡물, 빵, 생선, 육류 등 식재료에 다양한 방식으로 올리브오일을 가미해 맛깔스럽고 깔끔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페타치즈, 그리스 요거트도 빼놓을 수 없다.
 
◆입증된 그리스음식의 건강성
 
사실 그리스식단의 '건강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 받아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안셀 키스 미국 미네소타대학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일본,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등 7개국 국민들의 식생활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이 결과 그리스 크레타섬과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남부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루 열량의 40%를 지방으로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보다 지방 섭취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도 심장병 사망률은 지중해 연안 거주자가 미국인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크레타 고지대 주민들은 미국인보다 지방을 3배나 더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혈관 관련 질환이 10만명 중 9명에 불과했다. 미국인의 심혈관 관련 질환 발병비율은 이보다 40배나 높았다.
 
키스 교수 연구팀은 지중해 연안 사람들의 식단이 심장병을 크게 줄였다고 분석했다. 크레타섬 주민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지방을 엄청나게 많이 섭취하지만 그 지방은 주로 불포화지방인 올리브와 올리브오일이다. 이러한 불포화지방은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트리글리세리드 수치를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미국에서는 그리스 요거트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 지난 2011년 3월에 발표된 UBS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 요거트 브랜드인 '초바니'와 '파예'는 미국 전체 요거트시장에서 각각 9%, 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공업계의 선도기업인 '다농'과 '요플레'가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그리스 요거트를 급하게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미국의 건강전문잡지 <헬스>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에 한국의 김치, 일본의 낫또, 스페인의 올리브오일, 인도의 렌틸콩과 함께 그리스 요거트가 포함되기도 했다.
 
물론 그리스 요거트의 선풍적인 인기몰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반 요거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걸쭉하고 시큼한 맛이 독특하긴 하지만 이러한 이례적인 인기몰이는 지중해식 혹은 그리스식단의 인기에 편승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스 요거트란 작명 역시 연원을 따지고 보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불가리아, 터키 등 그리스 인근지역의 전통 요거트와 큰 차이가 없는데 문화적 이미지상 그리스 요거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요거트를 포함한 그리스음식이 차별화된 맛과 건강 및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건강식이라는 인식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페타치즈와 올리브오일, 그리스의 잠재력
 
이러한 그리스 음식이 침체의 늪에 빠진 그리스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뚱딴지같은 발상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도 아니다. 현재 그리스는 2개의 '잠재력이 매우 풍부한' 식품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페타치즈와 올리브오일이다.
 
페타치즈는 그리스를 포함한 발칸반도 국가에서 만들어진 치즈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 중 하나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산세가 험해 땅이 비옥하지 않고 돌이 많아 소를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은 소 대신 양과 염소를 주로 키운다.
 
페타치즈는 양치기들이 양유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치즈 제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호메로스의 겥오디세이겦에 나와 있다.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롭스가 자신의 동굴에서 양유로 치즈를 만들었는데 이 치즈가 바로 페타치즈다. 소금물에 담가 두기 때문에 '절인 치즈'라고도 불린다.
 
페타치즈는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치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각각의 방식으로 제조한다. 하지만 페타치즈 분쟁 결과 2002년부터 그리스에서 생산된 페타치즈가 유럽연합(EU)의 원산지 명칭 보호(PDO)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2007년부터 그리스 이외의 국가들은 페타치즈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권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현재 전세계 페타치즈(다른 국가에서 생산하는 양유 치즈 포함)시장의 28%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 프랑스, 덴마크 등 다른 국가들이 연구개발과 제조시설 확충 등을 통해 양유 치즈를 대량생산하고 있는데 반해 그리스는 여전히 농가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식단에 꼭 들어가는 올리브오일도 상황은 유사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리스 올리브오일 품질은 결코 올리브오일 강국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올리브오일 생산업체들은 수많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 시장점유율을 확대해온 반면 그리스 올리브 생산업체들은 기업이라기보다 농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결과 그리스는 전세계 올리브오일 산업의 4%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의 올리브오일 생산이 좀더 기업화·현대화한다면 시장점유율을 높일 만한 잠재력은 충분하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리스는 지난 60여년 가운데 상당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유럽의 평균을 웃돌았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 정부는 콘크리트, 알루미늄 등 건축자재와 복제약 제조를 발전시켜 경제의 농업 의존도를 낮췄다. 또 국제무역의 빠른 성장을 통해 많은 혜택을 얻기도 했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 선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물론 탈세와 정경유착, 부정부패는 여전히 그리스 경제회복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인구 1100만명의 소국이다. 빠르게 추락한 만큼 반등도 빨리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페타치즈, 올리브오일 등 전통적으로 그리스가 꾸준하게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소기의 성과를 낸다면 경제회복의 단초를 마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요즘처럼 그리스음식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