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영화와 연계한 금융상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은행들이 지정한 영화가 흥행할 경우 관객수에 따라 금리를 더 얹어주는 상품이다. 이러한 영화 연계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고객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두는 분야는 관객수다. 영화가 흥행할 경우 가입금액과 기간에 따라 최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이자를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일까. '흥행'보다는 '건전성'을 우선적으로 본다. 영화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자극적일 경우 흥행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제외한다. 은행들이 자극적인 영화와 손을 잡을 경우 고객의 정서보다는 마케팅에 치중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어서다. 

 

시나리오와 출연배우, 스크린 확보 등도 선정과정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만 선택할 경우 금융상품 판매가 저조해질 수 있어서다. 

 

은행권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관객이 기분전환 할 수 있고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우선적으로 선정한다"면서 "만약 선정기준에 부합되면 은행이 대내외적인 홍보와 이벤트 등을 대신해주고 덩달아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해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영화 제작이 들어가는 도중 시나리오와 제작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본 후 내부회의를 거친다"면서 "아직은 초기단계에 불과해 일부 시행착오도 있지만 고객에게 더 많은 금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 연동 금융상품은 과거 저축은행들이 주로 판매했다. 영화를 제작할 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영화 개봉 이후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이 축소되고 PF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부실저축은행이 대거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들은 현재 PF대출 자체를 아예 중지했다. 

 

시중은행들은 이러한 영향 탓에 영화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다만 금융상품과 연계해 영화를 홍보해주거나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간접지원을 해준다. 영화사업 지원과 고객 니즈 충족,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 등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동구매 바람 은행권에도 '솔솔'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영화와 연계한 예·적금 상품의 금리는 최대 연 3.8~4% 수준이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기본적으로 연 3%중반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지만 관객수와 은행이 지정한 카드로 영화 예매, 불법 다운로드 근절 동참 등에 참여하면 연 0.2~1%대의 이자를 더 챙겨준다. 최근 저금리시대가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비교적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은행이 출시한 '시네마정기예금 간첩'은 9월10일 현재 대략 280억원어치가 팔렸다. 9월5일 출시된 이 상품은 불과 5일만에 인기가 급상승했으며 판매계좌수는 2200좌를 훌쩍 넘었다. 영화 <간첩>의 경우 아직 개봉하지 않았음에도 은행이 직접 홍보를 하고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상품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은행이 지난 7월9일부터 3주간 한시적으로 판매한 '하나 e-플러스 공동구매 적금'은 영화 <도둑들>이 흥행하면서 가입고객 전원이 최고금리를 챙겼다. 당시 이 영화의 관객수가 1200만명을 넘어서면서 만기 3년제 최종 적용금리는 연 4.8%가 됐다. 이 상품은 하나은행의 적금상품 기본금리보다 0.4%포인트 높게 책정됐다. KB국민은행은 연 4.9%까지 우대금리가 가능한 'KB영화사랑 적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시중금리보다 영화 연계상품의 금리가 더 높은 것은 공동구매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물품을 구입할 때 한명보다는 다수가 대량으로 구입할 경우 할인율이 높은 것처럼 은행들 역시 시중자금을 한번에 유치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이율을 높게 책정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중은행이 선택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의 <마이블랙미니드레스>는 50만명을 돌파할 경우 0.1%포인트 금리를 추가 제공하기로 했지만 최종관객수는 고작 31만명에 그쳤다. <마이웨이> 역시 최고 500만명(0.3%포인트) 돌파를 기대했지만 214만명을 확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해 기대를 모았던 <7광구>는 예상치를 한참 밑돌았다. 이 예금의 추가금리 제공조건은 관객 300만명을 넘으면 0.1%포인트, 700만명은 0.3%포인트였다. 그러나 최종관객수는 224만명에 머물렀다.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은 대부분 은행이 제공한 기본금리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은행 시네마예금 1호였던 <김종욱찾기>는 관객 100만명 동원 시 추가금리 0.1%포인트, 500만명을 돌파하면 0.2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전국 최종관객수는 110만명으로 집계됐다. 우대금리는 0.1%포인트에 그친 셈이다.

 

 

박스.. 사행성 논란 vs 고객 선택 존중

 

영화 연계 금융상품을 출시한 곳은 KB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다. 반면 신한은행은 내부적으로 검토했지만 최근 출시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고객들에게 사행성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일부 은행들이 스포츠 경기 결과에 따라 우대금리를 주는 금융상품을 출시해 감독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KB국민은행의 'KB국민프로야구예금Ⅲ'. 이 상품은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승패를 스포츠토토처럼 맞추면 정기예금보다 높은 최대 연 4.9%의 금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경기결과에 베팅하도록 하는 것이 사행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데다 실제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미미해 감독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신한은행은 스포츠 연계 금융상품과 영화 연계 금융상품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금리혜택은 은행이 지정한 카드 이용실적이 높거나 자사은행으로 급여를 자동이체하는 등 충성고객에게 더 높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데 영화 연계 상품은 별개"라며 "스포츠 연계 상품이나 영화 연계 상품 모두 고객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따라 혜택을 주는 것은 마치 사행성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현재 상품을 출시한 은행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A은행 관계자는 "사행성이란 도박과 복권처럼 투자결과에 따라 손실을 봐야 하는데 지금 출시된 상품은 대부분 기본적인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이 손해보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고객으로부터 유치한 자금으로 금리를 더 얹어주고 덩달아 문화사업까지 지원하는데 사행성 조장이라는 주장이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