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빗장을 풀자 대기업은 화색이 돌았다. 외국인관광객 수요를 겨냥한 정부의 호텔 건축 규제완화 조치에 그간 호텔 건축 규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기업들의 묵은 고민이 해소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9월 14차 기업환경 개선대책을 통해 호텔 건립 조건을 완화했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서도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을 개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시설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다.

앞선 7월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관광호텔의 용적률을 현행보다 최대 5배(일반주거지역 1.5배, 상업지역 5배) 늘려 신축할 수 있도록 하는 ‘관광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심의·의결한바 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야권에서 재벌특혜로 분위기를 몰아가는데다 문화재 보존 문제가 상충하고 있어서다. 대기업의 호텔사업 진출을 두고 제기되는 두 가지 문제를 정리해봤다.
 

대한항공 7성급 호텔 프로젝트 부지
사진_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1. 학교 옆 호텔, 허용 여부에 초점

대한항공은 올해 1월 서울 중부교육지원청에 경복궁 인근에 7성급 호텔 건축을 허가해달라는 소송에서 또다시 패소했다. 대한항공은 중부교육청이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인 종로구 송현동 일대 3만6000㎡에 한옥호텔 등 복합시설물 설립조성안을 부결하자 소송을 냈었다.

해당 부지는 2008년 대한항공이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을 들여 사들인 땅이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지하4층 지상4층 객실 150개 규모의 국내 최초의 7성급 특급호텔과 공연장, 갤러리 등이 들어서는 문화복합시설을 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가 주축이 돼 움직이고 있다.


서울고법은 인근에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 등 3개 중·고등학교가 밀집해 있어 호텔이 이 학교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해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대한항공의 패소 판결을 내린 근거로 꼽는다. 호텔이 중부교육청의 학교보호법상 유해시설로 봐야한다는 결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현재 학교보건법 6조는 환경위생정화구역인 학교 경계선 직선거리 200m 내에 호텔 등을 지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역시 패소한 대한항공이지만 현재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정부가 카지노나 유흥주점이 없는 관광호텔의 경우라면 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서의 건축을 승인하겠다며 규제의 끈을 늦추고 있어서다. 같은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이미 18대 국회에서 폐기됐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19대에 또다시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미 시행이 확정된 관광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과 더불어 재벌들의 호텔 건축 프로젝트는 사실상 순풍을 타게 된다.

대한항공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에 추진 중인 삼성그룹의 호텔 건립 계획 역시 학교보건법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진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12월 1384억원을 들여 대성산업 본사 부지 5855㎡(약 1700평)를 매입해 비즈니스호텔을 짓겠다는 개발계획서를 종로구청에 제출했다. 이 호텔은 호텔신라가 위탁운영을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가 추진 중인 관훈동 호텔
사진_류승희 기자
 
2. 뜨거운 감자 '문화재 충돌'
서울은 600년 역사에서 보듯 곳곳이 문화재로 가득한 도시다. 특히 4대문 안에 위치한 땅 아래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 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4대문 안의 땅은 파기만 하면 유적이 나온다’고 할 정도다.

최근 서울시내 곳곳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호텔건립 사업이 진행되면서 사업을 강행하려는 호텔건축사업 주체와 문화재 훼손을 막으려는 정치권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김윤덕(민주통합당, 전주 완산갑)의원은 4일 문화재청을 대상으로 한 문방위 첫 국정감사에서 “최근 대기업들이 서울시내에 진행 또는 추진예정인 대형 호텔 부지는 문화유적지가 많은 지역”이라며 “특히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의 호텔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문화재 훼손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지난 2월부터 흥인지문 바로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JW메리어트 호텔 신축공사는 문화재의 특성이나 훼손에 대해 사전에 고려한 흔적이 거의 없다”면서 “돌과 흙을 쌓아 만든 동대문은 지난 2006년에도 안전성 우려가 제기됐고, 불균형 지반침하현상이 나타날 경우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또 “동대문 성곽공원 조성사업을 위해 120년 역사의 동대문교회는 이전을 추진하면서 바로 옆에 10층짜리 호텔을 짓게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관훈동 삼성화재의 호텔 부지 역시 국감에서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해당 부지는 조계사 맞은편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 있고 문화유적지가 많은 지역이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이미 문화재가 발굴돼 공사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이 같은 근거로 김 의원은 “문화재가 재벌 특혜로 인해 허물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문화재 인근에 건축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현상변경 신청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해당된 사례가 거의 없고, 매장문화재법률에 의해 발굴이 이뤄졌지만 보존가치가 없는 유물이어서 허가가 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