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속에 3분기 기업 실적이 '어닝쇼크' 수준으로 추락했다. 실적시즌에 접어들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경쟁적으로 기업 실적 추정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강세까지 가세하면서 증시 체감온도는 뚝 떨어졌다. 아시아지역 통화 강세 기조 속에서 원/달러 환율 1100원선이 무너졌다. 수출로 매출을 올리는 대형주들의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9월 미국의 QE3(3차 양적완화) 발표 이후 국내 증시로 밀려들었던 외국인 자금은 슬슬 차익실현에 나서려는 분위기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선 밑으로 내려가면 환차익을 거두려는 외국인 심리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최근 주식시장에서 여행주, 항공주, 음식료, 제약주 등은 원화강세에 휘파람을 불고 있다. 내수주를 중심으로 한 원화강세 수혜주에 올라탄다면 훈훈한 연말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기 안 좋다며 원화값 급등은 왜?
10월25일, 원/달러 환율 1100원이 붕괴됐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5.40원 하락한 1098.20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중순까지 1120선을 지켜내던 환율이 10월에는 1110원선으로 내려왔고, 급기야 지난 10월16일에는 1년여 만에 1110원이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당초 심리적인 지지선인 원/달러 환율 1100원이 연내 붕괴되긴 힘들 것으로 봤지만 이런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원화강세는 장기적으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대외적으로 남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QE3,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매입 프로그램 등 글로벌 정책공조가 진행됐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유동성 공급 확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한국시장이 주목을 받았다. 풍부한 유동성은 환율 하락의 단초가 됐다.
덧붙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향상도 원화강세의 주요인이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재정 건전성이 좋은 한국에 대해 무디스, 피치, S&P(스탠더드앤푸어스)가 국가신용등급을 연이어 상향했다"면서 "과거에 원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저평가 정도가 심했던 터라 투자 메리트가 한층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부인, 코리아 애정전선 빨간불
주식시장에서 원화강세는 달갑지 않은 이슈다. 시장을 주도할 수급의 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환율 걱정으로 자칫 발목이 잡힐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외국인 동향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은 지난달 국내 증시에서 3조680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이에 코스피지수는 2000선으로 화답했다. 한국증시와 사랑에 빠진 '스미스 부인', '소피아 부인'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스미스부인은 달러 캐리트레이드, 소피아부인은 유로 캐리트레이드 자금을 말하는 증권가 용어다.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고 약세를 보이는 통화를 빌려 기대수익률이 높은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유럽계 자금인 소피아부인은 지난 8월과 9월 각각 4조4431억원, 2조3305억원어치를 국내증시에 쏟아 부었다. 미국계인 스미스부인은 8월에 순매도를 보였다가 9월 2423억원 순매수로 전환해 국내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1100원에 근접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외국인은 환율 1100~1200원 사이에서 국내주식을 사들였다가 1100원을 밑돌면 순매도로 전환한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올 9월까지 환율과 코스피의 외국인 순매수 관계를 분석해 본 결과, 환율이 1100원 이상~1150원 미만일 때 38조353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고 1150원 이상~1200원 미만일 때는 30조6970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900원 이상~1100원 미만에선 76조1465억원어치 순매도로 돌아섰다.
박중섭 대신증권 연구원은 "과거 패턴을 분석해보면 외국인이 1100원을 기점으로 미만일 때는 국내증시에서 매도세를, 이상일 때는 매수세를 보였다"면서 "국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 대부분이 수출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하면 수익성이 떨어져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000선을 밟았던 코스피지수는 10월 들어 계속 후진하고 있다. 어느덧 1900선 마저 위협 당하고 있다. 국내증시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의 매수 둔화 혹은 매도세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향후 환율이 추가 하락할 경우 외국인의 '셀 코리아'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김씨부인은 원화강세 수혜주에 '러브콜'
증시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원화강세로 인한 피해주가 있다면 반드시 그 반대편에는 수혜주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수혜주로는 수출주의 대척점에 서 있는 내수주가 꼽힌다.
원화강세 속에 지난달 23일 코스피 지상에서 업종별 희비가 크게 엇갈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수주인 전기가스업과 의약품은 2%대의 상승률로 주목을 받았다. 의약품 가운데 근화제약, 대웅제약 등 제약주가 급등했고, 전기가스업 중에선 한국가스공사가 4%대의 강세를 보였다.
또 다른 내수주인 통신주도 KT, LG유플러스, SK텔레콤이 일제히 상승마감하면서 1.58% 올랐다. LG유플러스는 5%대의 강세를 기록했다. 통신주는 배당매력까지 더해지면서 연말이 될수록 주목받고 있다. 유통업 중에선 현대홈쇼핑이 5%대의 급등세를 나타냈다.
반면 환율 피해주로 꼽히는 전기전자, 운송장비, 건설업 등은 일제히 하락했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자동자주는 원화강세와 함께 엔화약세까지 맞물려 최근 부진을 털지 못하고 있다. 엔화약세가 지속되면 경쟁사인 일본 자동차 대비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김 연구원은 "환율강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고 그 부정적 효과는 제한될 것"이라며 "환율 변화를 걱정하기보다는 수혜주 찾기를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수혜주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주가 꼽힌다. 비행기 도입 과정에서 수반되는 막대한 외화부채와 자본비용을 고려하면 원화강세가 영업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설명이다. 해외여행객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행주인 하나투어, 모두투어도 주목받고 있다.
음식료 관련주도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원재료 수입액이 완제품 수출액보다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원화강세가 필연적으로 영업이익의 대폭적인 개선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제약주의 경우 의약품 수입액이 전체 영업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해외 기술특허 관련 로열티 지급액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원화강세는 제약주 전반적인 손익구조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정유주와 철강 대표주의 경우 막대한 외화부채를 통해 설비투자를 진행했다. 따라서 환율변화에 따른 순수 영업레벨에서의 영향은 득실이 교차할 수 있지만 채무부담과 금융부담이 감소하는 효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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