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선 의미있는 기획전이 열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작가 월전 장우성 화백과 중국의 대표 화가 리커란(李可染)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기획전이었다. '한·중 대가전'이라 불린 이 기획전에선 두 화가의 작품이 각각 30점씩, 총 60점 전시됐다. 

월전 장우성(1912~2005)은 해방 이후 일본 화풍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과 소재를 찾은 인물이다. 한국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전통 산수화에서 벗어나 인물과 일상을 소재로 자신만의 월전화풍을 만들었다. 현충사의 충무공영정도 그렸고 바티칸의 초청을 받아 바티칸궁전 성모자상도 그렸다.


리커란(1907~1989)은 중국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이를 현대화한 인물로 손꼽힌다. 전통적인 수묵의 기법을 이어가면서도 사실적 회화기법을 도입해 독창적인 산수화풍을 개척했다.

덕수궁미술관 전시회에선 리커란의 만산홍편이란 작품도 소개됐다. 만산홍편은 마오쩌둥의 시 간만산홍편 층림진염(看萬山紅遍, 層林盡染=온산이 붉고 숲마다 물들었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미술시장의 대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월전의 작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200만~300만원에 거래되는 작품이 많고 대작도 500만~1000만원선에 거래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이 떨어졌다. 다음달 초 열리는 서울옥션 기획 경매에서 월전의 매화도는 낮은 추정가 200만원에 출품됐다.

반면 리커란의 작품은 깜짝 놀랄 만큼 비싸졌다. 리커란의 만산홍편은 올해 초 중국 폴리옥션 경매에서 544억원에 거래됐다. 2003년 한국을 찾았던 만산홍편 시리즈 중 하나다. 경매 시작가 1억8000만위안을 훌쩍 넘어 2억9300만위안에 낙찰됐다. 월전의 작품 가격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리커란의 작품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0배에 달하는 가격 상승을 보였다. 시대적 의미와 작품성, 각 나라를 상징한다는 대표성 등은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10년사이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생겼다.


월전과 리커란의 작품은 한국과 중국 미술시장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한국 미술시장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중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섰다. 지난 10년간 한국과 중국 미술 시장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미술, 문화산업? vs 사치산업?

중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미술을 문화산업으로 보는지, 사치산업으로 보는지 문제다. 중국은 미술시장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육성해야 할 문화산업으로 보고 있다.

중국 최대 경매사인 폴리옥션이 한 예다. 폴리옥션은 지난 2005년 설립된 중국 최대 경매회사다. 폴리옥션의 대주주는 특이하게도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사실상 군이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인민해방군은 지난 1992년 차이나폴리그룹을 세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투자 전문회사를 세워 군 자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군인공제회가 대규모 자산 운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폴리그룹은 현재 폴리테크놀로지 폴리서던그룹, 폴리홀딩스, 폴리에너지, 폴리파이낸스 등 수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2341억위안(약 42조원, 2010년 기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폴리리얼에스테이트와 폴리인베스트먼트는 중국과 홍콩 증시에 상장도 돼 있다.

폴리그룹은 2005년 폴리옥션을 세웠다. 폴리옥션은 불과 수년만에 글로벌 시장의 리더로 컸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양분하던 미술 경매 시장에 강력한 라이벌로 폴리옥션이 등장했다.

최근 프랑스 미술경매 전문업체인 아트프라이스가 집계한 연간(2011.7.~2012.6.) 경매 실적에서 폴리옥션은 소더비와 크리스티, 필립드퓨리에 이어 글로벌 4위를 차지했다. 낙찰 가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톱 10 거래 중 상당수가 폴리옥션이 주관한 경매다.

◆ 세제 혜택도 확대…홍콩+베이징 시너지

중국 정부는 미술시장 육성을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폴리옥션 외에 해외 경매 회사의 중국 본토 진출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있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은 홍콩을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 미술시장에 접근할 뿐이다.

반대로 폴리옥션은 뉴욕·홍콩 등에 사무소를 내고 서구 미술 작품의 거래도 활발히 전개하는 등 서구 시장 진출도 확대하고 있다.

세제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징엔 조만간 공항에서 면세 혜택을 받으며 미술 거래를 할 수 있는 프리포트제도가 시행된다. 홍콩과 같이 세제혜택이 가능한 셈이다. 홍콩과 베이징을 연계한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중국령이 된 홍콩은 이미 글로벌 미술 시장의 중심 축에 서 있었다. 홍콩이 미술 거래의 핵심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미술 거래에 대한 세금이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미술 거래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세금 문제 탓에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011~2012년 시즌에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올린 매출 가운데 홍콩 시장의 비중은 각각 21%, 28%에 달했다.

경매 외에 홍콩에 진출한 갤러리 수도 많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홍콩에 소재한 갤러리 수는 266개에 달했다. 홍콩에선 해마다 6만~7만명이 찾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도 열린다.

내년 5월엔 프랑스의 대형 갤러리인 프렌치엠마뉴엘퍼로틴이 홍콩에 800㎡ 규모로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래리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펄램, 벤브라운, 에드워드 멜링그 등 유명 갤러리들도 홍콩에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은 중국 화풍의 그림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중국 콜렉터들이 수집하는 그림은 모두 중국 전통의 그림들이다. 피카소를 누르고 세계 최대 거래 실적을 올린 장다첸이나 지난해 최고가 경매 기록을 세운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 등은 모두 중국 화풍을 보인다.

한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변방에 머무르고 있다. 양도소득세 부과 문제를 두고 갈등만 빚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미술 관련 스캔들이 터져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라도 미술 시장을 육성해야 할 문화산업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K팝에 뒤이어 국격을 높여줄 차세대 먹거리는 미술 산업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