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영해면 괴시리 ‘괴시마을’에 가면 300년 된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 집들이 담을 나누고 골목을 이뤄 여행자를 반긴다. 300년 전 겨울 어느 날 마실 나섰던 누군가도 이 돌담길 모퉁이를 돌아섰겠지. 괴시마을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4km 솔숲과 백사장이 이어지는 고래불해변은 겨울바다의 낭만으로 가득하다.
 

고래불해변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생 태어난 ‘괴시마을’

영해 버스정류장 대합실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햇볕 드는 곳에 옹송그리며 모여 앉은 사람들, 시골 버스정류장은 추억이 묻어나는 흑백사진 같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영덕으로, 영덕에서 다시 이곳 영해까지, 자가용으로도 먼 거리지만 버스를 갈아타는 여행길에서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여행의 즐거움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대합실 밖으로 나와서 첫 목적지인 괴시마을로 간다. 곧게 뻗은 길 끝에 있는 로터리는 이 거리가 옛 번화가였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로터리 중앙에는 3.1만세운동 기념탑이 있었고 공중에 걸린 길 안내 표지판에 괴시마을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1km 정도 걸었을까? 괴시마을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괴시마을은 고려 말에 함창 김씨가 터를 잡으면서 처음 생겼다. 함창 김씨는 고려말 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외가이며 선생의 외조모가 지금 괴시마을 이루고 사는 영양 남씨다. 목은 선생이 태어난 곳이 이 마을 뒷산 언덕에 있다.  

괴시마을의 원래 이름은 ‘호지촌’이었는데 목은 선생이 중국에서 보았던 괴시마을 풍경과 ‘호지촌’의 풍경이 닮아 마을 이름을 ‘괴시’로 바꾸었다.


선생은 고려말기 유학자로서 고려의 과거에는 물론 원나라 과거에도 합격했던 유능한 인재였다. 500년 가까운 세월 왕조를 이어온 고려, 그 시대의 말엽에 태어나 새로운 나라 조선의 개국을 봐야 했던 선생은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시 한 편이 당시 그의 마음을 담아 아직도 전한다.

백설이 자아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대숲 솔숲을 지나자 목은기념관

기와지붕이 물결치고 황토빛 흙돌담이 골목을 이룬 마을에 겨울 오후의 햇볕이 아늑하게 고였다. 손님을 배웅하러 나온 아줌마와 아저씨의 순박한 웃음이 옛 마을 골목을 환하게 비친다.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옆 돌담에는 ‘목은 이색 등산로’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큰 나무 앞을 지나 숲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은 쉬지 않고 계속 불었고 대숲 전체가 바람에 일렁거렸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이 수  많은 댓잎을 흔들고 지나가며 ‘싸르락싸르락’ 거리는 소리를 만든다.   

대숲을 지나자 소나무 숲이 나왔다. 마른 솔 향이 그윽하게 퍼졌다. 솔 숲 안에 목은기념관, 사진마을로 가는 길, 괴시마을로 내려가는 길 등 세 갈래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상으로 보면 괴시마을에서 보았던 ‘목은 이색 등산로’ 표지판부터 여기까지 200m 거리다. 목은기념관 쪽으로 걸었다. 

하늘을 덮은 소나무숲길 150m는 짧지만 숲의 향기 물씬 풍기는 시간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목은기념관은 단출하면서도 아늑해 보였다.

그곳에는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집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고, 그 옆에는 오래 전 누군가 살았던 기와집 한 채와 목은 기념관이 자리를 틀었다. 규모가 작은 기념관에는 목은 이색 선생의 생애와 사상 등을 알 수 있는 전시품들을 볼 수 있다.  

목은 이색 기념관을 돌아보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서남향으로 들어앉은 마을은 오후의 햇살을 가득 안고 있었다. 겨울 오후의 햇살은 색온도가 따듯하고 풍부했다.

그 햇볕을 가득 안고 있는 어느 집 추녀 아래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담장 안 자질구레한 집안 살림들조차 그 햇볕을 받아 평온해 보인다. 있어야 할 것들이 그 자리에 있어서 평온한 그런 안식이다. 
 

괴시마을 기와집과 골목
◆300년 전 한옥 뜰 앞에 서다

마을로 내려와 제일 처음 들른 집이 1805년에 지은 ‘구계댁’이다. 1910년에 한 번 중수한 일이 있었으나 집의 역사를 보면 200년도 넘었다. 

구계댁 말고도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 경주댁, 주곡댁, 천전댁, 해촌고택, 대남댁, 영감댁, 영은고택 등 200~300년 된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괴시마을 집들은 입구(口)자 형태의 가옥으로 조선 후기 영남 지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보았는데 그 중 마음에 남는 집이 두 채다. 하나는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이며 또 하나는 물소와고택이었다.

물소와고택은 조선시대 좌승지로 추증된 물소와 남택만 선생의 증손인 남유진 선생이 세운 집이다. 남자의 생활공간인 사랑채와 여자의 생활공간 사이에 담을 만들어 남녀의 공간을 엄격하게 분리해 놓았다. 괴시파종택은 약 300년 전 남붕익 선생이 건립한 것으로서 입구(口)자 형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됐다.

황금 싸라기 같은 오후의 햇살이 툇마루에 내려앉았다. 그곳에 앉아 바람 잦아든 겨울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따듯한 햇볕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채로 걸러낸 고운 밀가루 같은 햇살은 살갗을 타고 ‘간질간질’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기와와 흙, 돌, 나무로 지어 진 한옥의 지붕과 처마, 기둥, 서까래, 벽과 툇마루 등이 만들어 내는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조화 때문에 이런 햇볕의 질감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래불해변 고래 조형물
 
◆4km 솔숲과 백사장, 고래불  
마을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대진항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면 작은 항구마을인 대진항이 있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대진해변과 고래불해변이 차례로 나온다.

대진해변 앞에 갯골을 건너는 ‘고래불대교’가 놓였다. 운치 있는 다리를 건너면 고래불해변의 남쪽 끝이다. 이곳부터 음악분수와 돌고래조형물이 있는 고래불해변의 북쪽 끝까지 4km다.

4km 내내 백사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소나무 숲도 방풍림처럼 백사장과 나란히 이어진다. 

고래불해변 북쪽 끝에는 음악분수대와 돌고래조형물이 있었다. 겨울이라 음악분수는 작동하지 않았지만 돌고래조형물은 겨울 파란 바다와 잘 어울린다.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돌고래 조형물 앞 백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운 모래가 바람에 휩쓸린다. 바람은 그렇게 백사장 위로 나부끼며 물결을 닮은 무늬를 만든다.

고운 모래와 바람이 만들어 놓은 고래불해변을 거닐며 친구를 기다린다. 포항에 사는 오래된 친구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친구는 포항에서 이곳까지 차를 달려 올 것이다. 이 겨울에 여기까지 왔으니 강구항 대게 거리에서 대게 맛 한 번 봐야 한다는 게 친구의 의견이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멀리 사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행복도 선물한다.

돌아가는 길은 동행길이다. 대진항을 지나 축산항으로 차를 달린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로 달려 도착한 곳은 영덕 해맞이 공원과 풍력발전소. 강구항은 조금 더 가야 하지만 풍차가 있는 이색적인 풍경을 친구는 내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대한 풍차가 바닷가 언덕에 서 있다. 풍차가 있는 언덕까지 올라가서 풍차 아래 섰다. 풍차 날개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훙훙’ 돌아간다.  

먼데 있는 풍차와 풍차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길은 언덕으로 이어지고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서울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안동 - 영덕 - 영해 - 괴시마을(이후 괴시마을 앞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대진항·축산항’ 이정표 따라 우회전해서 바다 쪽으로 가다가 대진항, 대진해변, 고래불대교, 고래불해변을 차례로 돌아봄)

대중교통
영덕시외버스터미널 도착(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영덕 행 버스 운행). 영해 가는 버스 이용. 이후 현지 교통 및 도보 이동.

-걷기
영해버스터미널에서 약 1km 거리에 괴시마을이 있다. 괴시마을에서 고래불해변까지 약 8.5km 정도 거리다. 추운 겨울이라도 걷고 싶은 여행자는 영해버스터미널에서 괴시마을까지 걸어가서 마을을 돌아보고 도로를 따라 대진항까지 간 다음에 대진해변-고래불해변 순으로 걷는다. 고래불해변 돌고래조형물이 도착지점이다. 옷은 물론 모자와 장갑, 워머 등 방한에 특별하게 신경써야 한다. 도로를 따라 가야하기 때문에 차도 조심해야 한다. 영해로 돌아갈 때는 음악분수대 근처에 있는 병곡면 파출소를 찾아간다. 파출소 부근 병곡버스정류장에서 영해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가 많지 않다.

-버스이용1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면 괴시마을-고래불해변 순으로 다니는 것보다 고래불해변을 먼저 보고 괴시마을을 보는 게 편하다. 영해에서 고래불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고래불해변에서 내려서 바닷가를 돌아보고 병곡버스정류장에서 영해 가는 버스를 타고 괴시마을과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면 대진항과 바닷가 해안도로의 운치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버스이용2
괴시마을을 돌아보고 고래불해변으로 이동하려면 영해에서 괴시마을까지 버스가 많지 않으므로 걸어가거나(약 1km 거리)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괴시마을에서 고래불해변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다시 영해버스터미널로 나와서 고래불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문의 : 영해버스터미널 054-732-1564

<숙소>
고래불해변 주변에 민박 및 모텔 있음.

<음식>
고래불해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축산항을 지나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나온다. 축산항과 강구항 사이에는 해맞이공원과 풍력발전단지가 있어 들러볼만 하다. 약 35km 정도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기고 도착한 강구항 대게 거리에서 대게 맛을 즐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