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말 1달러당 엔화는 79.84엔이었지만 올해 2월12일에는 93.81엔으로 17.5% 올랐다. 그만큼 엔화가치가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반면 1달러당 원화는 지난해 7월 하순 1151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 하락하며 지난 1월11일에는 1054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낙폭과대 인식에 국내경기 둔화 우려제기 등으로 원/달러 환율은 다시 1090원대 후반까지 올랐다가 최근에는 108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최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이 일본의 행보를 용인한 점도 엔화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 미국·유럽에 이어 일본이 공격적 양적완화를 수차 단행했음에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지 않다는 점도 일본의 추가적 엔화약세를 가능케 할 것으로 분석됐다.
김수만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은 규제리스크 등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원화절상 기대는 여전하다"며 "일본의 엔화약세 흐름은 G20 회의 이후 속도가 둔화될 수 있을지언정 (강세로의) 방향전환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제는 증시에서도 그간의 우려가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들이 속속 나온다. 한국기업들은 불리한 환율환경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버티는 반면 최근 우호적인 환율흐름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들의 실적개선은 더디다는 분석이다.
◆환율악재에도 잘 버티는 한국, 환율호재에도 더딘 일본
일반적으로 원화강세는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며 엔화약세는 주요 수출시장에서 한국기업과 경쟁하는 일본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한국기업에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이 환율흐름으로 인해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같은 우려가 국내 주가흐름을 억눌러왔다. 코스피지수는 미국 재정절벽 위기가 지난 1월 초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며 한때 2000을 웃돌기도 했지만 좀체 오르지 못했다. 미국·유럽을 포함한 주요국 증시가 일제 랠리를 이어가는 와중에서 나타난 부진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솔솔 나온다. 김승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엔화약세를 유도하는 데 성공해도 그것이 일본 경제회복에 큰 기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일본이 경상적자국으로 전환돼 있어 엔화약세에 따른 수혜가 일본 전체에 퍼지기는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수출비중은 일본이 14.5%로 한국(54%), 대만(72%) 등 아시아지역 주요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은 상태다.
수출입구조 역시 일본은 엔화약세 흐름의 혜택을 보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 과거 20여년간 진행된 엔화강세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통화헤지 구조가 되레 최근의 엔화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설계돼 있다는 지적이다.
김승현 연구원은 "일본의 원재료 및 소재 수입비중이 전체 수입에서 50%를 넘어 엔화약세가 지속되면 비용이 증대되는 효과가 더 크다"며 "수출에 있어서도 다른 아시아국가와 경합도가 높은 소비재보다 자본재 수출비중이 50% 이상이어서 엔화약세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경기부양 목적에서 보면 지나친 엔화약세 유도는 그다지 효과적인 정책이 아닐 수 있다"며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고 내수소비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IT업종을 예로 들며 엔화약세가 일본 주요기업의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IT업종은 원화강세-엔화약세로 한국과 일본의 명암이 확연히 엇갈린 대표업종이다.
하지만 박 연구원은 "정책개입을 통한 엔화 환율상승은 드라마틱한 실적개선 기대감을 낳지만 일본 IT기업들의 환율민감도는 한국기업에 비해 낮아 실적개선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엔/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주요 일본 IT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1~2%포인트 정도 개선되는 데 그친다"며 "이는 한국기업의 환율민감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 "최근 일본 IT기업의 주가급등으로 한국·일본 IT기업들의 밸류에이션 격차가 해소됐다"며 "반면 한국 IT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기반으로 이익성장 추세를 이어가고 있어 외국인 매수세가 당분간 한국 IT기업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대표적인 환율피해 업종으로 꼽혔던 경우에도 과도한 우려는 금물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판매량을 결정하는 변수는 환율 외에도 유가, 금리, 실업률, 부양책 등 시장요소와 브랜드밸류, 디자인, 딜러망 등 개별요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고 연구원은 "지난 수년간 전체 생산의 60%(현대차, 기아차는 40%)까지 해외생산 비중을 늘린 현대·기아차의 내성을 최근의 주가변동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며 "지난 4년간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 강화와 양·질적 성장을 이유로 큰 폭의 주가상승을 경험한 바 있는데 이는 '환율'이라는 한가지 이유로 희석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기아차는 이미 이익결정력과 판매량 증가라는 측면에서 환율변수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환율과 판매량(시장점유율)의 상관성이 둔화된다는 시그널이 도출된다면 투자자들도 현대·기아차의 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업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에도 환율은 자동차업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양희준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업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유지했다. 양 연구원은 "1달러당 1000원까지 하락을 가정한 주가에서 단기저점이 형성됐음을 고려할 때 이제는 환율이 주요 변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 시점에서의 변수는 현대·기아차가 업황과 관계없이 질적·재무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여부"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