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면접기회조차 없던 지방대 출신… 3년만에 '금의환향'
 
KBS 2TV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모티브가 된 이제석씨(32)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진 않지만 '착한 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이태백(진구 분)은 매회 톡톡튀는 광고아이디어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지방대를 중퇴한 후 최고의 광고기획자가 되는 모습을 그린 이 드라마의 이태백처럼 실제 인물인 이제석씨(현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 역시 업계에선 '광고천재'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씨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스펙의 한계를 이겨내고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크리에이티브로 두각을 드러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동네 '간판쟁이'에서 세계광고계 '스타'로

계명대(대구 소재) 시각디자인학과를 수석으로 나온 그는 졸업 후 수많은 기업에 입사원서를 내며 광고기획자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단 한군데도 그에게 면접 통보를 해온 곳이 없었다. 각종 광고 공모전을 기웃거려도 봤지만, 입상은 늘 남의 몫이었다.
'지방대 출신이어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에 좌절하면서도 그는 마냥 놀 수만은 없었기에 동네 작은 간판가게에서 간판디자인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광고기획자에 대한 꿈을 끝내 저버릴 수 없었고 급기야 지난 200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이씨는 3년 새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천재'가 되어 돌아왔다.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편입한 후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광고계의 오스카상인 '클리오 어워드'(동상), 미국광고협회의 '애디 어워드'(금상) 등 국제적인 공모전에서 총 29개의 메달을 따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뉴욕의 심장부 맨해튼에서 일본의 독도 침탈을 비판하는 게릴라광고 캠페인을 펼쳐 뉴욕타임스 등 국내외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세계적인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권총 모양으로 변형시킨 게릴라광고를 올려 세계 광고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굴지의 글로벌 광고기획사에서 줄기찬 러브콜을 받았지만 2009년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하며 이씨는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크래프트사와 오레오를 비롯해 크리넥스티슈, 질레트 면도기, 시티하베스트 자선단체, 세계평화 반전단체, 미(美) 정부 마약단속국 등의 광고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능력자' 찾기 나선 재계

본지가 이제석씨를 주목하는 이유는 학력이나 경력보다는 능력을 통해 성공한, 즉 '스펙파괴'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을 비롯해 재계 곳곳에선 스펙파괴 '훈풍'이 일고 있다. 삼성, 현대차, 롯데 등이 대졸사원에 버금가는 대우를 보장하며 고졸 채용을 늘리고 있고, 일부 공기업에선 아예 '스펙파괴'를 채용전형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대기업 사이에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이는 것 역시 스펙파괴에 힘을 보태는 징후다.

실제 30대 대기업의 지난해 고졸 채용 규모는 총 4만1000여명으로, 대졸을 포함한 신규 채용 인력(13만6000여명)의 30%나 됐다. 삼성그룹이 9100명으로 가장 많았고 롯데 7800명, LG 5700명, 포스코 3100명, CJ 2350명의 순이었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최근 331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 기업의 62%가 올해 고졸 채용계획을 갖고 있고 채용인원을 '늘리겠다'(31%)는 응답이 '줄이겠다'(6%)는 대답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공기업 마사회의 경우 2013년 신입사원 명단에 고졸은 물론 여성, 장애인, 지방 출신, 농업인 자녀 등 다양한 배경의 지원자들의 이름이 대거 올랐다. 특히 올해 마사회 채용에는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 쏠림 현상이 없었다. 지방대 출신이 3분의 1이나 됐다. 학력 제한이 없어 고졸 출신도 두명이나 합격했고 나이도 21세부터 39세까지 다양했다.
 
◆학력파괴 왜?…기업위축이 빚은 산물

이처럼 지금 재계에선 학력이나 나이 등 '기본 스펙'을 중시하는 메인흐름에서 점차 '능력·성과' 중심으로 인재상을 새롭게 설정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헤드헌팅 기업 HR코리아의 이경옥 이사는 "아직까지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면서도 "하지만 특정분야에 있어 전문성을 겸비했거나 관련경험이 있는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HR코리아에 따르면 반도체회사에 재직 중이던 전문대 출신 회사원 A씨는 영어회화조차 원활하지 않지만 세계적 통신회사로 최근 이직했으며, 고졸 출신으로 모 기업 회계업무를 맡았던 B씨 역시 중견 제조기업으로 스카우트돼 현재 재무팀장 자리까지 꿰찼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스펙파괴 훈풍이 불기 시작한 건 왜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경기침체, 불안전한 국내외 경제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기업의 인재채용 방식이 '키우는 인재' 중심에서 '현장투입 인재'로 관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기업의 한 인사부장은 "우리기업이 고졸 채용을 늘리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학교육이 실무와 동떨어진 것에 반해 고교교육(주로 실업고)은 실무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마이스터고처럼 특성화된 고교에서의 교육은 기업이 현장에서 꼭 필요한 교육을 미리 가르치는 것이어서 해당 인재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경옥 이사 역시 "기업들이 예전처럼 잠재력 하나만 보고 장기적으로 인재를 키우겠다는 생각보다는 기회비용이나 투자대비 효과면에서 실제 업무에 바로 투입시킬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만 해도 기업들의 '스펙찾기'는 일반적이었다. 많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입사지원자의 업무능력보다는 출신대학이나 부모의 직업을 많이 보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OO대 출신이 많아서 OO대 출신이었으면 한다'는 내부 불문율(?)까지 갖춘 기업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좋은 스펙이 우선시되는 분위기는 여전하나 기업 곳곳에선 '이 일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원하는 움직임도 상당하다. 스펙파괴의 물꼬가 트이고 있는 것이다. 
 
■ '광고천재' 이제석 작품, 도대체 어떻길래…

이제석씨의 광고작품을 보면 왜 그가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제작한 광고에는 '발상의 전환'이 담겨 있다. 

 건물 옥상 위로 삐죽 솟은 굴뚝을 총열로 보이도록 한 광고. '한해 대기오염으로 6만명이 사망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뉴욕 원쇼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미국 장애인협회 광고. 이 광고로 이씨는 광고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클리오 어워드' 동상을 수상했다.
2010년말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수리에 들어갔을 당시의 퍼포먼스. 제목은 '탈의 중'.
 
'섬 도둑질 그만'. 일본의 야욕을 고발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서 벌인 게릴라 퍼포먼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