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건설의 이라크 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송사문제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한화건설이 이라크 정부와 협의 중이던 추가 수주가 답보상태로 지속될 전망이다.

기술이나 재정적인 문제, 혹은 외교 갈등의 차원으로 빚어진 수주 난항이 아니어서 한화건설에게 김 회장의 부재는 그 무엇보다 뼈아프다. 이라크 사업에 있어 김 회장의 공백은 단순한 '자리 부재' 그 이상을 뜻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계약을 체결시킨 김 회장의 활약은 지금도 업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의미가 컸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김 회장의 지휘 아래 이라크에서 국내 건설사 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해냈다. 이라크에는 여전히 많은 노다지 사업들이 남아있지만, 추후 사업 수주 여부에 따라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이라크 건설사업의 왕좌에 있다 지휘자를 잃고 계속 노심초사 중인 한화건설과 복귀가 불투명한 김 회장의 미래에 업계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10만호 건설사업 본계약 체결식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_민동훈 기자)

‘건설 금밭’ 이라크, 접수 눈앞에 두고…
해외건설협회와 한화건설 등에 따르면 한화건설은 발전·정유시설, 군시설 현대화사업 및 태양광 사업 등 1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수주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80억달려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조성사업 수주 직후부터 계속 추가 수주를 추진해왔다.

그동안 업계에선 한화의 수주 행보가 국내 건설사들의 이라크 동반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라크는 국내외 수많은 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해외건설 시장 중 하나다. 이라크 정부는 2017년까지 주택(800억달러), 교통인프라(460억달러), 에너지(800억달러), IT·의료(690억달러) 등 2750억달러(약 310조원)에 달하는 재건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 회장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뒤 지난 15일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자 추가 수주에 먹구름이 짙게 낀 게 아니냐는 회사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라크 건설 사업의 큰 축을 담당하던 한화가 이대로 밀려나게 되면 그 틈새로 해외 건설사들이 대거 이라크 시장을 선점할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은 “현재 2·3단계 이라크 재건사업에 대한 협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며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이라크 협력관계가 벌어진 틈을 타 중국과 터키 등 경쟁국 건설사들에게 이라크 재건시장의 선점효과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 역시 지난해 12월 이라크 비스마야 현장에서 “김승연 회장의 경영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국익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경영일선에 복귀해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에겐 '김 회장=한화'?
김승연 회장의 역할이 이라크 사업에 있어 얼마나 컸기에 회사 전체가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일까.



한화건설에 따르면 이라크 신도시 재건사업 수주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김 회장의 선견지명이 큰 몫을 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 전인 2009년, 김 회장은 “대규모 전후 복구사업이 잇따를 것”이라며 김 부회장에게 이라크사업을 전담케 하고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이후 김 회장은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로 직접 수십차례 이라크 현지를 방문하는 등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고 결국 수주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해건협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본계약 체결로 우리나라 해외건설 누적수주액이 50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화건설이 47년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국내 100여개 중소 자재 및 하도급 업체와 1500여명의 인력이 이라크에 진출하게 됐다. 이미 한화건설 이라크 사업단과 협력업체 임직원 200여명이 현지에 입주했다. 이들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하우징 공사 이전까지 PC플랜트 공사와 베이스캠프 공사, 정수·하수처리장 공사 등에 투입된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 수주를 계기로 한화건설에 대한 이라크 정부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김 회장에게 발전·정유시설, 학교, 병원, 군시설현대화, 태양광 사업 등 1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건사업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달 초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개최된 ‘한-이라크 경제협력포럼’에서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의 대표사례로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이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도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한화, 퍼스트”라는 말을 연발하는 동시에 김 회장의 빠른 복귀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승인권자 없어 사업진행 불가…복귀 절실"

당장 진행 중인 신도시 건설사업의 경우는 김 부회장이 맡아 관리해 나갈 예정이어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회장이 직접 이라크 정부와 신뢰를 쌓아온 것이 한화건설과 이라크 정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주효했기에 추후 사업 진행에선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안이나 차선책은 없는 것일까.

한화건설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이라크 사업의 실무 담당자라면, 직접 사업을 추진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 회장뿐”이라며 “가장 중요한 사업 승인 결정권자가 없으면 제아무리 좋은 사업안도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부회장을 비롯한 이라크 사업단의 설득만으로는 이라크 정부에 확신과 신뢰를 주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라크 내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중소 협력사 동반진출이 무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 회장의 복귀가 회사 입장에선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회장의 부재로 인해 한화건설의 이라크 사업의 난항뿐 아니라 전체 그룹 경영도 사실상 동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태양광 사업마저 주춤한 상태로 신규 투자계획은 공식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임원인사는 단행하지 못했고 부장급 이하 직원들의 승진도 최소한으로 이뤄졌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모든 게 멈춰진 그룹 사정상 한화건설의 차후 전망도 밝지만은 않게 됐다”며 “지금으로썬 이라크 사업 등 당장 진행 중인 사업들을 제대로 진행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일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