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협력사 직원들의 분노
8개월간 근로자 10명 숨져… "현대제철이 해고 조종" 파업 사태까지

현대제철 당진공장이 잇단 사건·사고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 5월 5명의 협력사 직원이 아르곤가스 누출로 질식사하더니 7월 중순에는 또 다른 협력사 직원이 소속 회사에 항의하며 음독자살을 시도해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달 말에는 공장 옥외 컨베이어 벨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재산피해를 입었다. 최근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협력사에 대한 근로여건 개선과 부당한 징계해고 등을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분노한 비정규직 근로자들

우선 지난 7월29일 돌입한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전조합원 파업은 노조원들에 대한 해고 및 정직 통보로부터 촉발됐다. 노조 간부를 중심으로 징계해고와 계약해지를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게 비정규직지회 측 주장이다.
특히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이 비정규직지회를 파괴하고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협력사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라며 격분하고 있어 불길이 현대제철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더구나 7월 중순에는 조합원이 음독자살을 시도해 해당사건이 현대제철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구설에도 휩싸였다. 이 조합원은 소속 협력사의 상조회비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가 7월15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에 같은 날 자신의 차량에서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직원은 끝내 징계해고 통보를 받았다. 소속 협력사는 직원의 징계해고 통보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비정규직지회는 협력사가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에게만 해고와 중징계를 남발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징계처분을 통보받은 조합원은 음독자살을 시도한 직원을 포함해 모두 12명. 징계해고(3명)와 정직 3개월에 계약만료(4명), 정직 2개월(2명), 계약만료(1명), 감봉 1개월(2명) 등이다.

비정규직지회가 밝힌 징계사유를 살펴보면 협력사들은 교섭위원을 업체별 한명만 인정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회교섭위원의 교섭 참여를 무단결근 처리하거나 이에 항의한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을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징계해고 또는 계약해지했다.

조민구 비정규직지회장은 "노조 간부들을 몽땅 해고해서 아예 교섭 대상을 없애버리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협력사들은 판박이처럼 같은 내용으로 교섭에 임했고 현대제철이 협력사들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해온 점에 비춰볼 때 이번 해고 사태의 배후에는 현대제철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조 지회장은 "해고로 비정규직의 고용을 위협하는 협력사와 배후에 감춰진 현대제철의 도발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도발하는 행동엔 금속노조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고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투쟁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해 10월15일 지회 설립인가를 받고 고용안정, 처우개선, 노조인정 등 3가지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1월4일 1차 교섭 요구부터 현재 22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협력사들은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안에 어떠한 제시안도 내놓지 않았다. 때문에 앞으로도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비정규직지회는 2차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1차 파업은 지난 7월29일부터 8월1일까지 3일간 진행됐다.

◆협력사들의 엇갈린 주장

일부 협력사들은 직원들의 근로여건이 이미 개선됐고 징계해고도 합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협력사들은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어 이번 파업의 원인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현대제철과 우리는 갑을관계에 놓인 상황이라 뭐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조심스레 말을 아꼈다. 이를 두고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이 협력사들의 인사권에 관여하고 있으며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조를 부정하고 탄압하는 행동을 비정규직 재계약일인 지난 7월31일에 맞춰 자행한 사실도 현대제철의 입김이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 지회장은 "노동부 수시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협력사들은 ▲근로기준법 위반 ▲퇴직금 지급 연기 및 축소 ▲각종 잔업수당 축소 지급 ▲최저임금 미지급 ▲유일 강제노동 등 수많은 노동관련 법을 위반한 사업장"이라며 "노동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한 협력사는 자신의 위법행위에 대해 사죄하거나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조에 불만을 지닌 현대제철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 확실하다"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측은 "협력사 직원의 인사권에 관여하거나 배후에서 조종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응수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논의된 부분도 없다"며 관련설을 일축했다.

◆끊이지 않는 당진공장 '악몽'

이번 파업 사태로 현대제철이 주목 받자 당진공장의 근로여건 등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앞서 발생한 사고들로 인해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명이 넘는 근로자가 숨졌다. 지난해 9월에는 철구조물 해체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사망했다. 이어 10월에는 크레인 전원공급 작업 중이던 직원이 감전으로 추락사했다. 11월에는 교량상판 작업 근로자가 추락해 숨진데 이어 전로제강공장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감전사했다. 지난 3월에는 고로 3기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사망했다. 또한 지난 5월에는 정비작업을 하던 5명의 근로자가 아르곤가스 누출로 세상을 떠났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당진공장에선 모두 1123건에 달하는 위반사항이 발견돼 비난을 받았다. 현대제철 898건, 협력사 156건, 건설사 69건 등이었다.

또한 당진공장은 지난 7월31일 옥외 컨베이어 벨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500만원 상당(경찰 추산)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불길은 컨베이어 벨트 30m가량을 태웠다. 당시 소방당국은 인력 30여명과 펌프차 등 장비 13대를 동원해 불길을 잡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조 지회장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는 총 50개가 넘는 협력사와 45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제철소라는 위험하고 유해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현대제철과 협력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 양산하고 막대한 이윤을 챙겨 '죽음의 공장, 먹고 살기 힘든 공장'을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1년 단기 계약직으로 업체가 변경되면 다시 근로계약을 써야 하는 상시고용불안에 시달리며 휴일 없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