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매각 실패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서울 중구 남대문로 STX팬오션.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100대 해운사 중 22곳 위기관리능력평가 ‘고위험’ 분류

해운업황 침체로 가뜩이나 침울한 해운사들이 정부의 금융지원 약속마저 '공수표'가 될 처지에 놓여 한여름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최근 국내 100대 해운사를 대상으로 부채비율, 이자보상배율, 영업이익률, 유동부채, 차입금 의존도, 현금성 자산비중, 영업현금 흐름 등 8개 지표 기준 위기관리능력을 평가한 결과 22개 회사가 4개 지표 이상에서 '고위험'으로 분류됐다. 이는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태를 의미하며,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불거진 현상이다.

실제로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은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적자가 지속되면서 재무구조 악화에 직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운사들은 고육지책으로 정부의 정책금융지원에 적지않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현실적인 제약에 걸려 해운사들의 숨통은 쉽게 트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중순, 해운사들의 보증과 대출업무를 담당할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규정 위반과 관련이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터라 논란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대선공약 포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세계무역기구 규정을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은 "선박금융공사 설립 및 운영이 세계무역기구와 분쟁을 초래할 것이란 금융당국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반박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 공상은행은 지난 2008년 이후 국영선사인 코스코에 150억달러를 신용 대출했고 덴마크 정부도 자국 해운사인 머스크에 62억달러의 금융 차입을 지원했다"며 "정부가 선박금융 전문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세계무역기구 규정만 강조하며 대선 공약 포기를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운사들의 또다른 '희망'인 해운보증기금 설립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 해양수산부 등은 "당장 추진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며 설립을 보류했다. 해운보증기금은 세계무역기구 제소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민간 출연금 비중이 절반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해운업계의 사정상 출연금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안에 해운보증기금이 설립되더라도 제대로 선박 투자를 하지 못한 해운사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이를 두고 해양수산부의 무능력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해수부는 최근까지 해운보증기금 설립 방침을 밝히며 해운업계로부터 재원출연 약속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위가 반대 움직임을 보이자 주춤하는 모양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사들이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올해를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러한 위기감은 해운업에 대한 확실한 정책금융지원책이 나오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