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국내 최고급 일식당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높은 대우에 만족스러웠다. 김 대표의 부친은 직업군인이었다.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 후 식당을 운영했다.
호텔 생활 5년 차가 되었을 때 부친이 ‘새로 식당을 크게 할 테니 직장을 나오라’고 했다. 부친의 요청에 따라 직장 문을 나섰다. 그것이 시련의 시작이었다. 문밖에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 스시 집, 배달 전문점, 동업… 실패 또 좌절
막상 직장을 나왔지만 부친의 ‘큰 식당’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치밀한 계획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벌였던 것이다. 부친이 원망스러웠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작은 규모의 호텔에 들어갔다. 그러나 근무 여건이나 음식 수준이 형편없어 도저히 적응하지 못했다. 군소 규모 호텔 몇 군데를 전전했다.
이럴 바엔 내 가게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산 후곡마을에 점포가 나왔다.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개업부터 했다. ‘어전’이라는 간판을 달고 스시 집을 차렸다.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는 생각만 가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생각과는 달리 한 달에 1000만원씩 적자가 났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점포를 내놓아도 나가지 않았다. 결국, 1억원이 넘는 손해를 본 뒤 2년 만에 염가로 가게를 넘겼다.
“저는 단지 스시를 잘 만드는 숙련된 기술자였을 뿐이죠. 고객을 만족시키고 점포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경영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거죠. 정신자세나 경영능력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창업했으니 실패가 당연했던 겁니다.”
스시 집 경영에 실패 후 일산 연립주택 단지 내 뒷골목에 배달 음식 전문점을 차렸다. 비록 배달 음식이었지만 김 대표가 직접 조리한 고급스러운음식이었다.
당초 배달 음식 전문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점포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점포 얻는 비용은 저렴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마찬가지거나 오히려 더 들어갔다.
특히 매일 광고 전단지를 뿌려야 했는데, 그 제작과 배포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배달원들이 자주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데다 무단결근이 잦아 영업에 애를 먹었다.
“하루는 세 명의 배달원 중 두 명이 결근했어요. 할 수 없이 10여 곳의 음식을 내 차에 싣고 직접 배달을 다녔지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욕을 하면서 거절하더군요. 너무 시간이 늦어서 다른 음식을 주문해 먹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딱 한 집이 음식을 받아주었습니다. 그 집도 이미 다른 음식을 준비해서 먹고 있었어요. 그 집을 나오자마자 큰 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울면서도….”
다시 1년만에 배달 음식 전문점을 접고 그 자라에 배달 전문 횟집을 차렸다. 주메뉴는 세꼬시였다. 배달원 한 명만 데리고 둘이 했는데 의외로 잘됐다. 횟감을 찍어 먹는 장맛이 좋아서 인기가 있었다. 차츰 예전의 실패를 만회해나갔다.
그 무렵 어느 자산가로부터 서울 강남에 165.29m2(50평) 정도의 점포를 얻을 예정인데 함께 동업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잘 나가기 시작했던 횟집을 접고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겨 입점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 내복 세 겹 껴입고 호떡 팔다가 순천 횟집 주방장으로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지만 오라는 곳은 없었다. 처남이 준 돈 100만원으로 호떡 리어카를 구입해 상계동에서 호떡을 팔았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는 호떡 장사에게 내복을 세 겹으로 껴입게 했다. 얼어빠진 김밥을 씹어가며 호떡을 열심히 팔았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민원이 들어가 쫓겨나야 했다.
무일푼으로 하루하루 지내던 차에 순천의 고급 일식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서울의 최고급 일식집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가족과 함께 순천으로 이주, 오랜만에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달라졌다. 그동안 계속된 시련이나 고통의 원인과 의미를 반추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정신 상태나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비록 주방장으로 일했지만 사장의 입장이 되어 일했다. 그야말로 주인정신으로 스시를 만들고 사장의 마음으로 고객을 대했다.
순천 지역 각계각층의 유지들이 김 대표의 스시 맛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도 내 손님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고급 손님은 줄을 이었고 김 대표와 스시 집은 바빴다. 예전과는 달라진 태도였다.
4년이 되자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꿨다. 서울로 진출하겠다는 마음이 점점 강렬해졌다. 김 대표가 판단하기에 한국 사람은 누구나 초밥을 좋아한다. 그런데 너무 비싸서 사먹을 엄두를 못 낼 뿐이다. 가격을 낮추면 손님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다.
궁즉통, 간절히 바라면 통하는 법인가보다.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5000만원의 대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거주할 집이 없었다. 다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기적적으로 동탄의 임대 아파트를 얻었다.
◇ 회칼보다 더 예리한 사랑으로 고객 마음을 저미다
창업지원금을 강남구청을 통해 받았기 때문에 강남구 관내에서 창업해야 했다. 그러나 5000만원으로 창업할 수 있는 점포가 강남에는 하나도 없었다. 몇 달간을 지역생활정보지만 들여다봤다. 그러나 5000만원 이하의 매물로 나온 점포는 없었다. 그냥 지원금을 반납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전화가 왔다. 2009년 4월, 권리금 없이 지금의 29.75m²(9평) 점포를 보증금 3000만원에 얻었다. 나머지 2000만원으로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설비와 식재료를 구입했다. 돈이 없어서 10일 벌어서 에어컨을 구입하고, 한 달 벌어서 간판을 달았다.
순천에서 4년 동안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으로 해보았던 사장 노릇을 제대로 했다. 오는 손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사랑하는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고의 초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손님은 줄을 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손님은 주인의 눈을 봅니다. 주인이 음식을 제대로 만드는지 정성을 다하는지 유심히 살펴봅니다. 이때 주인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다시는 손님이 오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기다렸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에게 미안해 최근 점포 확장공사를 마쳤다. 그의 시련극복과 성공의 비결은 철저히 ‘사랑의 원리’를 적용했을 뿐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고 직원을 대하고 일을 대하면 성공은 저절로 온다고 한다.
김 대표가 가진 신앙의 힘도 여기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향후 부부가 운영하는 1억원 이하의 우동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100개 정도 운영하는 것이 그의 1차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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