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동훈 머니투데이 기자

1950년대 '설탕신화'를 창조하고 시멘트 왕국 건설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동양그룹'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동양은 시멘트 등 제조업에 금융을 접목시키면서 종합금융그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계 20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안돼 부실그룹으로 전락하더니 재계 36위로 밀려났다. 동양을 두고 좌초된 웅진과 STX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설립 이래로 몇번이나 찾아온 위기지만 방식이야 어찌됐건 동양은 매번 극복했다. 과연 동양은 이번에 생긴 균열을 또 한번 막아낼 수 있을까.
◆다시 찾아온 균열 '어게인 1971·1998'

동양그룹에 위기가 닥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설립 이래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처음 균열이 생긴 건 1971년이다. 당시 시멘트 수요 감소에 따른 매출둔화, 차관원리금 상환부담 증대, 유류 등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동양은 휘청했다.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법원에 법정관리신청을 하곤 잠적까지 할 정도였다. 정부의 8.3 사채동결조치가 아니었다면 동양은 공중분해 됐을 수도 있다.


현재현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에도 동양은 위기를 겪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균열이 생긴 것. 그룹 주력이었던 종합금융사 동양종금과 금융계열사들은 부실악화로 퇴출 직전상태까지 몰렸다. 정부는 주인 있는 금융사라는 이유로 등을 돌렸다. 결국 동양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체 자금을 금융계열사에 쏟아 부으면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출혈이 상당했다.

최근 동양이 또 한번의 균열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번 균열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건설시장 부진으로 인한 시멘트 수요 감소와 제품가 하락, 외국계 기업 진출에 따른 경쟁 심화 등이 원인이다. 이로 인한 만성적인 실적 악화는 동양에 직격타를 날렸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동양의 누적적자는 1조1680억원에 달한다. 부채는 2조2000억원에서 4조4270억원으로 두배나 뛰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233.2%로 대규모 기업집단 평균치(108.6%)의 12배에 이른다.

이에 동양은 지난해 12월부터 자산매각을 통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올해 상반기까지 비핵심자산 매각과 자본유치 등을 통해 약 2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켜내지 못했다.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내놓겠다"

동양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엔 400억원 규모의 동양시멘트 폐열발전소를 매각했다. 동양네트웍스가 가진 오리온 주식을 팔았고 동양시멘트 등이 가진 선박, 창고, 레미콘공장 등도 이미 처분했다.

급기야는 미래주역사업의 일부 지분까지 내놨다. 동양은 구조조정 이후 미래 핵심 먹거리사업으로 에너지사업을 선정하고 강원도 삼척시에 대규모 민간 화력발전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지분까지도 일부 팔아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시멘트·금융·화력을 제외한 사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게 그룹의 결정"이라며 "이로써 회사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면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덩치가 큰 것들은 아직 성과가 없다. 한일합섬은 지난 2월 갑을합섬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가격 차이로 매각협상이 결렬됐다. 동양자산운용도 외국계 자본에 매각을 추진하다가 중단됐다. 다만 동양매직은 우선협상자인 KTB PE 컨소시엄에 참여할 국내 투자자들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9월 말 매각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의 핵심은 '속도'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서둘러 부채를 상환하는 게 관건이라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STX그룹의 경우 구조조정을 미루다 좌초한 사례"라며 "곧 업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강덕수 회장이 구조조정에 뜸을 들이면서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샐러리맨 신화 이어 사위 경영까지 '휘청'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지만 결국 채권단이 강덕수 STX 회장에게 경영 부실의 책임을 물어 퇴진을 요구했듯, 동양의 '사위 경영'도 무너질 것인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 회장은 1976년 이 창업주의 장녀 혜경씨(현 동양그룹 부회장)와 결혼했다. 당시 현 회장은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었으나 결혼과 함께 경영자의 길로 돌아섰다. 현 회장이 걸었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틀 정도 잠을 안 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강도가 높았다.

이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장자승계의 법칙'은 무너졌다. 국내 재계에서 처음으로 '사위 총수' 시대가 열린 것. 지금도 딸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늘었지만 사위에게 경영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 회장은 1988년 동양 회장에 오르자마자 증권, 보험 등 금융업으로 그룹의 무게중심을 옮기며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2009년에는 생보업계 최초로 동양생명을 상장시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유동성 악화로 인한 이번 균열로 '샐러리맨 신화'에 이어 '사위 경영'까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펼친다고는 하지만 동양의 매각대상 자산 중 일부는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음에도 현 회장이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2011년 채권단의 영향력에서 편법으로 벗어난 뒤 현 회장 등 그룹 핵심경영진의 연봉을 3배 가까이 끌어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엔 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회사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경영진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 같은 상황은 현 회장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음에도 시장의 반응이 냉담한 상황에서는 치명적이다. '사위 총수'의 대표 주자였던 현 회장. 과연 그가 15년 전에 이어 다시 동양의 균열을 막아낼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일각의 우려대로 현재를 위기로 볼 수도 있지만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