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경제 성장의 역군으로 불리던 건설업체들의 분위기가 어둡다. 최근 몇해 동안 사상 최악의 주택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낸 데다 해외에서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큰 손실을 입는 등 최악의 해를 보낸 영향도 한몫했다.

하지만 정작 건설사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담합이다. 담합과 관련해 이곳저곳에서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담합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된 사항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정부가 발주한 국책사업이다. 발주처가 정부다 보니 밉보일까봐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대외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흐리는 몰염치한 기업으로 낙인찍혀 국민들의 질타를 받느라 눈치를 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 건설사들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입찰담합 근절 관련 토론회’에 각사 대표들이 참석해 머리를 조아리며 정부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건설사 임원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뚫린 입 잘못 놀리면 안 된다. 가슴 속에 묻어야 한다”며 “나라가 어려우니 세금을 낸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 '담합 원죄'에 시름하는 건설사들


최근 건설사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내 건설사 중에 ‘담합’사건에 이름을 올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지 않은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상으로만 보면 국내 건설사들은 모두 ‘담합’으로 배를 불린 모양새다. 지난 11년간 공정위 심의결과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계열 건설업체들은 119건이나 시정명령 내지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이 중 2008년(36건)과 2009(39건)년에 63%가 몰렸다.

2008~2009년 민간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공공공사 발주가 크게 늘자 건설사들은 이윤 확대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담합했다. 이 기간 공공공사 발주는 2008년 32조원에서 2009년 51조원으로 약 60% 증가했다. 특히 2009년 상반기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 공사, 경인운하 사업, 4대강 정비사업, 새만금방수제사업,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 지하철 9호선 연장 등 서울시 발주 6개 사업, 인천도시철도 2호선사업 등 총공사비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턴키입찰 물량이 유례없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들 공사의 담합에 가담해 지금까지 건설사들에 부과된 과징금만 총 7000억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공정위는 최근 실시된 대형 국책공사를 모두 들여다 보겠다는 뜻을 밝혀 올 안에만 과징금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사태의 ‘원죄’는 건설사들에 있다. 아무리 ‘관행’이었고 ‘발주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담합은 명백한 위법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의무감으로 참여했다는 것 역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익이 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건설사들이 매번 적발되도 다시 공공공사 담합을 하는 것은 담합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과징금보다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업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4대강 담합 논란 사례처럼 건설사들도 억울해 할 여지는 있다. 최근에 과징금이 부과된 호남고속철만 하더라도 17개 공구 중 13개 공구는 1사 1공구만 가능하고, 그런 시공능력을 갖춘 건설사 숫자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국책사업은 발주단계부터 건설사들이 나눠 맡게끔 정부가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수년 전부터 업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 역시 원인으로 지목된다. 담합으로 지목된 공사 대부분이 대형 공공공사로 대부분 최저가낙찰제로 이뤄졌다. 일감이 필요한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것을 알면서도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협의’를 통한 상생을 택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통해 볼때 정부에서도 발주시점부터 건설사들이 담합을 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때 경고하고 처분하면 되는 것을 사업 끝날 때까지 묵인하고 있거나 4~5년이 지나서야 잘못했다고 지적하니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자료사진=뉴스1

◆ 영주(정부) 밑에 일하는 소작농(건설사)들의 품앗이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구조는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하얀 리본>(Das Weisse Band)의 배경과 비슷하다. 독일의 한 작은 농촌 마을의 지배구조를 보면 중세시대 영주 같은 대지주 남작이 실질적 지배자다. 대지주는 관리인들을 통해 수많은 소작농들의 생존과 생계를 좌지우지한다. 빈농들의 삶은 남작의 한마디에 달려있다.

때문에 소작농들은 두 손 들어 남작을 칭송하며 관리인들의 눈치 보기에 바쁘다. 소작농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기 싫은 일도 관리인의 강압에 의해 일을 해야만 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리인은 책임을 소작농에게 돌린다. 이러한 관리인의 횡포에 하고 싶은 말도, 변명도 소작농들은 입 밖에 꺼낼 수 없다. 자신만이 아닌 가족에게까지 보복이 갈까 두려워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지배구조를 우리나라 건설산업 구조에 대입시키면 '남작=정부, 관리인=공공기관, 소작농=건설사'라는 구조가 성립된다. 물론 100%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유사한 구조다.

4대강사업은 5년 동안 약 22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지난 정권의 역점 국책사업이다. MB정부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4대강사업을 정권의 핵심 사업으로 삼고 밀어붙였다. 이번에 압수수색을 당한 건설사들도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에 기꺼이 참여해 공사를 수행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에 4대강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고 결국 정권이 바뀐 뒤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은 사정당국으로부터 잇따른 조사를 받았다. 물론 이번에 검찰의 조사를 받는 건설사들이 4대강사업을 수행하면서 비자금 조성이나 입찰담합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불과 몇달 전만 하더라도 4대강사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던 정부 부처들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4대강사업에 대한 입장을 180도 바꾼 현실은 슬프다. 5년 임기의 단임 대통령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권의 핵심 국책사업을 수행했던 기업들이 현재의 건설사처럼 매번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더 슬픈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