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는 고대 중국의 기나라에 살던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일화가 나온다. 쓸데없는 걱정을 일컫는 '기우'(杞憂)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례했다.

기나라 사람의 얘기가 실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천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 사람이 산다면 땅이 꺼질까 걱정하는 것을 “쓸데 없다”고 단정 짓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은 멀쩡해 보였던 땅의 지반이 갑작스레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 혹은 구멍이 생기는 ‘싱크홀’(Sinkhole)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싱크홀 발생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95.2%의 시민이 "불안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또한 싱크홀 발생 시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79.6%가 "그렇다"고 답했다.
 
◆ 정부, 지하철·대형공사현장 긴급점검 나서

최근 국내에서 싱크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서울시 석촌지하차도에서 싱크홀뿐만 아니라 동공이 발견됐고 이외에 강남, 울산, 대구, 단양 등 전국 각지에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최근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지방자치단체별 싱크홀 발생현황’에 따르면 안행부는 지난 7월28일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의 한 아파트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지반침하사고가 직경 35m, 깊이 5m의 싱크홀로 인해 생긴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최근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는 서울 석촌호수 인근에 생긴 싱크홀의 14배에 달하는 크기다. 무엇보다 아파트단지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초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우려를 낳았다.

우려가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18일부터 8월 말까지 전국의 대형 굴착공사 현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점검에 나선 지역은 지하철 9호선 3단계 6개 공구(철도부문)다. 세부적으로 서울시 우이-신설 경전철 공사 2개 공구, 소사-원시 광역철도 2개 공구, 정자-관교 2개 공구가 검사대상이다.

또한 대형건축물을 짓는 지역도 검사대상에 포함됐다. 서울의 경우 광진구 웰치타워, 영등포 SK당산동지식산업센터, 용산구 문배동 주거복합신축공사, 동작구 메가복합시설 신축공사, 종로구 수송 1-9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대상이다. 이외에 성남 판교 알파리움 주상복합과 인천 송도 캠퍼스타운도 점검대상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이번에 한국시설안전공단,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지반공학회 등의 전문가들로 특별점검반을 구성해 이들 지역 주변의 지반과 지하수, 굴착 안전성 등 시공상태와 공사장 주변의 안전관리 등을 점검하고 의심되는 현장은 정밀검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대해 양승진 국토교통부 건설안전과 주무관은 "석촌과 유사한 사례를 찾다 보니 주로 지하굴착공사를 하는 곳 위주로 현장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대형건축물 짓거나 지반 약한 곳 '위험'
현재 정부가 조사에 나선 지역은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그렇다면 이외의 지역은 안전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가능성이 있다'다. 본래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싱크홀의 위협에서 안전한 편이지만 대형건축물을 짓는 곳이나 원래 지반이 약했던 지역, 폐광이 있는 지역 등은 여전히 싱크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이기영 경기개발연구원 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지질 측면에서 비교적 안정적"이라며 "경기와 충청, 호남지역은 대부분 화강암, 변성암 등 결정질암으로 구성돼 있어 싱크홀 발생 우려가 크지 않으나 지역에 따라 석회암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강 상류지역과 동해·삼척 등 동해안지역은 석회암층이 분포해 있어 지하수 흐름에 의한 용식작용으로 지하에 동공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의 말처럼 석회암층이 분포된 지역의 지하에서는 동공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지역에는 대도시가 들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석회암 지역이 아님에도 싱크홀 발생위험이 상존하는 곳이 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싱크홀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는 영등포와 잠실, 석촌동, 동부간선도로 등이 꼽힌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은 주로 모래가 많았던 곳인데 건설사들이 싱크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사를 했을 경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본래 지반이 약했던 곳인 만큼 공사를 진행하던 중 싱크홀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대도시라면 싱크홀 발생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대도시에 생기는 싱크홀은 토목공사를 진행하면서 지하수 등을 잘못 건드린 것이 원인"이라며 "부분적으로 석회암이 있는 지역의 경우 자연적인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땅속에 폐광이 있는데 건물을 올린 지역도 위험하다"며 "부천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대 초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의 재개발 아파트가 30여년 전 폐광된 갱도 위에 들어선 것으로 밝혀져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아파트를 공사하며 1966년부터 1976년 폐광될 때까지 아연, 납 등을 채굴하던 소인광산을 발견했는데 그대로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당시 부천시는 지반에 문제가 없다는 광업진흥공사의 결과에 따라 공사재개를 명령했다. 그러나 폐광에 고여 있는 물이 빠져나갈 경우 싱크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싱크홀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며 "전국적인 조사와 더불어 방지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