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현대인에게는 흘러간 옛 노래 같은 이 말을 가보처럼 붙잡는 이가 있다. 오스카시상식에 당당히 한복을 알린 목은정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
목 디자이너는 지난 2013년 오스카시상식 전에 열린 프리갈라쇼 오프닝 때 한복패션쇼를 열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에는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의 무대의상을 디자인했는데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한복에 세련되게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그는 그저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입을 수 있는 ‘신한복’으로 한복의 경지를 넓히고 있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한복 소재의 독특한 특성을 꾸준히 알린 결과 이제는 외국바이어로부터 먼저 의뢰가 들어온다. 지난 수십년간 한복을 고집해온 그의 노력이 이제 조금씩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한복을 알리기 위해 뉴욕패션위크에 참석할 예정인 목 디자이너를 만났다. 출국을 하루 앞둔 그의 얼굴에는 민간외교가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 한복으로 한국 알리는 민간외교가
목은정 디자이너는 한복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웨딩드레스를 만들던 그가 우리 전통 소재를 찾기 시작한 데는 웨딩드레스업계가 침체기를 맞은 것과 관련이 깊다. 수입드레스에 밀려 주변의 실력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폐업하기 시작한 것. 그는 수입드레스와 견줄 수 있는 것은 한복뿐이라고 여겼다.
“한복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요. 특히 서양인과 견주면 한복은 제가 더 낫지 않겠어요? 저만의 무기로 삼은 거죠.”
요즘 그는 우리 전통소재에 대한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시라는 원단은 시원해서 여름 옷에 적합한 반면 너무 잘 풀려서 가공이 어렵다. 거칠고 빳빳해서 다루는 과정이 힘들 뿐 아니라 모시 자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모시를 찾는 사람이 적다 보니 모시 농사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구한 모시로 연구한 끝에 모시가 통풍이 잘 되는 것은 물론 몸에 먼지가 잘 달라붙지 않는 특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모시는 서양옷으로 연출해도 손색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구김과 멋스러운 질감으로 옷을 더욱 고급스럽게 연출할 수 있었던 것. 이번 광복 70주년 무대의상으로 만든 건곤감리 의상도 이런 모시의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목 디자이너는 이 같은 우리 원단의 장점을 뉴욕의 유명 패션디자이너인 시저 갈린도에게 소개했다. 시저 갈린도는 우리 전통소재를 호평하며 꼭 자신의 옷에 반영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이번 뉴욕패션위크 참석도 이런 인연이 바탕이 돼 성사된 것이다.
“제가 한복디자인을 시작한 7~8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요즘 누가 한복을 입냐며 비웃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바이어들이 먼저 한복에 대해 묻고 소재로 쓰겠다고 해요. 우리 전통 원단이 새로운 것을 찾는 외국인의 구미를 당긴 거죠.”
최근 그는 우리 전통 소재의 우수성을 살려 실생활에도 적용하는 ‘신한복’ 제작에 푹 빠져있다. 청바지처럼 젊은 층이 많이 입는 옷에도 한복이 어울리도록 디자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와 만난 날 그가 입은 재킷은 한복소재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일상 옷과 잘 어울렸다.
“한복을 현대 옷에 얼마나 고급스럽게 접목시킬지가 관건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 사계절이 있는 게 축복이에요. 명주, 비단, 누빔솜, 모시 등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잖아요? 올 겨울에는 누빔을 이용해 날씬해 보이면서도 따뜻한 여성용 외투를 만들 계획입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여기서도 드러나죠.”
◆ 한복, 승산있는 싸움
그는 서울예술전문학교 뷰티예술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틈틈이 디자인고등학교 학생들을 찾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복을 배워야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장을 전공하던 학생이 자신의 강의를 듣고 한복으로 바꿨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는 그. 실제로 그가 가르쳤던 모 고등학교에서는 3분의 2가량의 학생들이 서양복에서 전통한복으로 전공을 바꾸는 일도 벌어졌다.
“고등학생쯤 되면 ‘이게 좋다, 이거 해라’라며 주입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요. 그들이 전공을 바꾼 것은 한복이 앞으로도 유망하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탓이죠. 저는 이렇게 한복을 택한 학생들을 적극 도울 생각입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한복제품을 판매하는 데 있지 않다. 세계적인 명품에 한복을 입혀 한복을 알리는 게 그의 가장 큰 목표다. 루이비통의 경우 올해 일본의 기모노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을 제품에 입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한복도 색동이나 조각보 같은 전통문양이 명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
“저는 의상을 파는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판매보다는 한복과 전통소재를 홍보하고 알리는 데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소재로도 충분히 현대화작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차츰 한복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뿌듯하다는 목 디자이너. 그의 노력을 보면 세계인이 한복을 즐겨 입을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요.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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