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회장님’이 나섰다. 지난 3일 신한·KB·하나금융 등 3대 금융그룹 회장이 “연봉의 30%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연봉반납 릴레이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튿날 성세환·박인규·김한 등 지방 3대 금융지주 회장이 연봉 자진 반납에 동참할 뜻을 밝혔고, 이광구 우리은행장에 이어 외국계은행인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도 연봉 20%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반납한 연봉을 재원으로 신규 채용에 나서겠다는 것. 심각한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회장님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용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봉반납 릴레이를 지켜보는 시선에는 박수와 우려가 섞여 있다.
◆연봉 반납 안하면 불경죄?

금융권 CEO들이 이처럼 일사분란하게 연봉 반납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연봉 20% 반납까지 이어지면서 아직 동참하지 않은 금융권 CEO들은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혹여 불경죄(?)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자발적 반납’이라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금융당국의 압력 의혹을 제기하며 “강압적인 연봉 반납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금융노조는 1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지난 3일 신한, KB,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급여의 30%를 반납해 채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후 각 은행의 은행장들은 물론 임원 선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증권사들도 유·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이런 강압적 관치에 의한 연봉 반납 압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압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회장님의 결단에 직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 시중은행의 직원은 “CEO연봉반납이라고 쓰고 직원 압박이라 읽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과 임금피크제 시행 등을 앞두고 직원들을 압박하는 카드라는 것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직원은 “솔직히 CEO는 연봉을 삭감한다 해도 보너스 등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보너스를 결정하는 사람이 CEO 아닌가. 하지만 직원들은 보너스 수준이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실질적 임금 압박만 들어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들이 CEO 연봉 반납으로 신규 채용을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섰다. 사진은 우리은행 관계자로부터 취업특강을 듣고 있는 예비 취업자들.

◆일자리 창출 없는 고용확대의 모순 

핵심은 이번 ‘연봉 반납 릴레이’가 실제 청년 고용 절벽 해소에 도움이 되느냐다. “청년 고용에 앞장 서겠다”는 상징성에 후한 점수를 준다해도 실질적 고용 창출 효과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현재 은행권의 인력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5만명에 비해 현재 3만명 이상 줄었다. 하지만 저금리시대를 맞아 은행권의 수익성은 날로 떨어지고 스마트금융 등 비대면채널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신규 일자리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이번 금융권 CEO들의 연봉 반납을 비판하기는 어렵지만 창조적인 일자리 창출의 방법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기업들이 필요로 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즉 기금을 모아서 신규 채용을 위한 ‘봉급’을 만드는 것일 뿐 ‘없던 일’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도 “1년 일 시키고 해고할 한시적 인턴 일자리라는 얘기”라며 “금세 잘릴 인턴 채용이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임금 반납이라는 ‘1회성 이벤트’보다는 금융 혁신과 수익구조 개선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인력을 고용하고 해마다 임금이 올라간다면 이는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며 “선진국처럼 영업이익이 오르면 임금총액을 늘리고 영업이익이 낮으면 임금총액도 낮추는 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고용문제도 보다 유연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