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여름도 서서히 저문다. 지난 여름내 가장 바쁜 곳은 냉면집 주방이었을 것이다. 건강 트렌드의 일환으로 메밀 면과 함께 평양냉면 소비가 늘고 있다. 또한 ‘면식의 귀족’인 평양냉면 마니아층도 두꺼워졌다. 최근 보란 듯 평양냉면을 개발해 성업 중인 신생 평양냉면집들도 속속 ‘프리미엄급 평양냉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평양냉면업계는 지금 춘추전국시대다. 월간외식경영은 4인의 음식 전문가와 함께 뜨거운 평양냉면 전투의 현장을 찾았다. 전통의 강호, 이들의 아성을 넘보는 중진급, 그리고 새로 도전장을 내민 신생 냉면집. 각양각색의 맛으로 무장한 평양냉면 맛집을 4인의 전문가는 과연 어떻게 평가했을까?
▲ 제공=월간외식경영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 '서경도락' 논현점 김수진(이하 김) / 평양냉면(1만원)은 식감이 중요하죠. 저는 육수는 진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합니다. 평양냉면은 아니지만 '장원막국수' 스타일의 메밀면을 선호하지요. '서경도락'의 냉면이 면발은 조금 더 굵고 육향은 조금 더 진했으면 하네요. 박상현(이하 박) / 냉면 마니아들이 냉면 교조주의에 빠져있는 게 문제입니다. 저마다 ‘정통’을 상정하고 그것만 평양냉면이고 나머지는 가짜라는 식이지요. 한국전쟁 이전의 오리지널 평양냉면 형태와 그 ‘정통’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굳이 정통이라는 틀에 가둘 게 아니라 좀 더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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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도락'의 면은 사라시나(속메밀) 특유의 단맛과 식감이 좀 느껴지는군요. 씹었을 때 입자들이 불균일한 느낌이 들어요. 이것은 면발 경도(硬度)의 문제이자 반죽단계 시 숙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보다 면발이 조금 더 굵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육수는 잘 냈습니다. 권오진(이하 권) / 면 맛과 육수 맛이 서로 비슷한 느낌입니다. 뭘 먹고 있는 건지 잘 구분이 안 가네요. 당기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기 육향이 충분하지 않고 국물 맛 역시 닝닝하네요. 육수에 뜬 기름도 조금 아쉽습니다. 육수 맛이 좀 더 진하고 면발도 조금 거칠었으면 합니다. 면이 조금 덜 익은 것 같아요. 마치 껌 씹는 것처럼 달라붙는 느낌이 납니다.
김진용(이하 용) / 메밀면 물성은 가수량, 메밀 부위, 메밀 함량, 삶는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업주의 선택에 따라 냉면 식감이 달라지지요. '서경도락' 냉면은 사라시나(속메밀) 81%로 만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라시나 냉면 특유의 식감을 잘 드러내지요. 면발이 담백하면서 단맛이 납니다.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기호의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육수의 육향은 좀 더 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냉면 맛은 평양냉면 마니아층에게 어필할 듯합니다. 그러나 신생 업소일수록 좀 더 마니아들보다 대중들 입맛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 / '서경도락'의 장점이자 단점은 기존 전통 평양냉면집들의 특성이 골고루 다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먹다 보면 '봉피양' '우래옥' '능라도'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경도락'만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권 / 시간이 지날수록 면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용 / 메밀은 밀가루에 비해 반죽할 때 물을 천천히 먹지요.
김 / 저는 개인적으로 쫄깃하고 차진 면발을 좋아합니다. 육수를 진한 것과 덜 진한 것, 두 가지 스타일로 준비해 손님 기호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용 / 순면(1만7000원)에서는 역시 뒷맛이 씁쓸한 메밀 특유의 맛이 느껴집니다. 면발이 굵고 메밀면 맛이 풍부하면서 담백한 맛이네요. 국물이 진하다 보니 면 맛도 진한 느낌입니다.
박 / '봉피양' 평양냉면은 레시피가 공개되다시피 했잖아요. 그래서 많은 평양냉면 집들이 '봉피양' 육수를 흉내 내려고 하지만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봉피양'의 가장 큰 장점은 늘 맛이 일정하다는 겁니다. 점포망이 여러 곳 있는데 어느 점포에서 먹어도 어느 계절에 먹어도 늘 똑같은 맛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육수에 돼지나 닭이 들어가도 소기기 육향을 잘 살렸습니다. 이게 '봉피양'의 저력이지요. 면발의 경도와 굵기도 일정합니다. 탄력마저 느껴지네요.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나라 평양냉면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범용성을 지닌 냉면이고 오래 싫증나지 않는 냉면입니다. 많은 평양냉면집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장점들이지요. 권 / 단맛이 강하지만, 전체적으로 대중들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군요. '서경도락'은 질리지 않는 맛인데 서로 비교가 됩니다. '서경도락'을 엄마가 해주는 밥이라면 '봉피양'은 맛있는 식당 밥이라고 할까요?
김 / 면과 육수의 밸런스가 좋은 것 같아요. '서경도락'이 장인정신으로 개성 추구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잖아요. 자기만의 맛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런데 '서경도락' 육수는 염도가 높은 편이었다면 '봉피양'은 육수 밸런스가 잘 맞아요. 상품으로서는 우수한 평양냉면입니다.
'정인면옥' 여의도점
권오진(이하 권) / '정인면옥' 평양냉면(9000원)은 맛이 없어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미(無味)가 특징이라는 얘깁니다. 동치미 육수를 넣으면 좀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박상현(이하 박) / 냉면은 향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보통 3단계로 향을 음미하지요. 1단계는 면을 흡입하는 순간 육향이 먼저 올라와야 합니다. 2단계는 입 안에서 육향과 메밀향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밀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면서 마무리됩니다. '정인면옥' 평양냉면은 이 3단계가 잘 맞아떨어집니다.
메밀향과 육향의 밸런스를 아주 잘 맞춘 것 같아요. 저는 먹고 난 뒤 마지막에 메밀향이 남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다만 계절에 따라 편차가 좀 있는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 집 육수에 '봉피양' 면을 조합하면 최고의 평양냉면이 될 것입니다. 김진용(이하 용) / 면이 매끈매끈하네요. 밀가루, 메밀, 전분의 조합으로 면 반죽을 하는데 아마 전분 대신 타피오카가 들어간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면에서 탄력이 느껴지네요.
김수진(이하 김) / 좀 더 많이 판매하려면 고객이 원하는 맛과 어느 정도의 타협은 불가피하 겠지요.
박 / '정인면옥'과 달리, '봉피양'은 돼지갈비와 함께 먹는 냉면입니다. 그러니 냉면 맛도 그 정도로 파워풀해야겠지요?
용 / 그렇군요. 일본의 돼지국물과 소바 생각도 나네요. '봉피양'은 꺼끌꺼끌하고 꽉 찬 면인데 이 집은 미끌미끌합니다. 타피오카는 면발을 매끄럽게 해주지만 먹으면 소화는 잘 안 됩니다.
'필동면옥' 권 / 평양냉면(1만원) 맛이 편안합니다. 면과 육수가 따로 놀지 않고요. 그만큼 서로 밸런스가 맞는 것 같아요.
용 / 그렇군요. 고춧가루를 푼 것도 그렇고 은근히 소주를 부르는 맛이라고 할 수 있네요. 육수에선 멸치 맛이 느껴집니다. 면은 고구마 전분이 많은 듯합니다.
김 / 추억을 먹는 집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분위기가 부담 없고 편안하네요. 정겨운 느낌과 친근한 느낌을 주네요.
박 / 노포의 매력이지요. 한 때는 이 집이 우리나라 평양냉면의 표준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냉면이 많은 발전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요. 메밀 맛이나 향에 대해 모르고 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평양냉면 집을 새로 시작하는 업주라면 '필동면옥'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냉면이 진화를 하고 발전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 집만의 맛은 또 마니아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친근한 냉면이 되어주지요.
'우래옥'
김 / 음식은 역시 눈으로 먹는 것 같아요. 고명 올린 모습이 만족스럽네요. 고명으로 쓴 배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어요. 들어올 때 직원들 서비스도 세련되었고요. 음식 외적 요소들이 평양냉면(1만3000원) 맛을 더 좋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육수의 육향이 좋군요.
용 / 면에서 메밀의 단점인 탄성의 부족을 보강한 것 같습니다. 씹는 식감이 좋아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마치 버터를 넣은 듯 고소한 맛이 납니다.
박 / 이 집은 일부러 기름 맛을 살립니다. 용 / 예전 어느 칡냉면이 생각나네요. 좋은 배를 직접 구매해서 단맛을 내 손님들을 많이 모았었지요.
권 / 절인 배추가 면 맛을 풍부하게 해주네요.
박 / 요즘 일본 라멘 집들도 돼지 등 동물 기름을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 집도 두태기름이나 뭔가 고소한 맛을 내는 부위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권 / 일본 튀김이나 크로켓이 고소한 것은 소고기와 돼지기름을 1:1로 브렌딩하기 때문이지요. 이 집도 그런 원리를 사용하고 있지 않나 싶군요.
용 / 면은 다른 곳보다 전분을 더 넣고 조금 더 오래 익힌 듯 합니다. 면은 물론이고 편육에서도 버터 맛이 나네요.
김 / 모든 요소들의 조화에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 면과 육수는 물론이고 분위기나 서비스까지 냉면 맛에 관여하고 있어요. 가히 분위기를 파는 집입니다.
권 / 겉절이가 맛있어요. 자극적이지 않고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맛입니다. 냉면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네요.
박 / 불고기랑 같이 먹어줘야 더 맛이 나죠. 이 집 냉면의 육향은 누구도 못 따라올 정도입니다. 본래 평양냉면 육수는 꿩고기로 냈잖아요. 꿩 육수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맛이 납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꿩 대신 소고기로 육수를 내는 세상이 되었지요. 이 집은 소고기로 육수를 내면서도 그 카랑카랑한 맛을 냅니다.
북한 '옥류관'에서 원래 꿩고기로 육수를 냈다고 하는군요. 김일성이 꿩고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80년대 이후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꿩 대신 소고기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김정일이 소고기를 더 좋아했다나요?
[총평]
김 / '봉피양'의 순면과 '서경도락'의 면이 좋았습니다. '서경도락'은 후발주자이지만 업주의 열정이 높아 발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육수는 '우래옥'이 제일 맘에 드는군요.
용 / '우래옥'의 복고풍 고명이 인상적입니다. 메밀을 오래 다뤄본 사람으로서는 '봉피양'의 면이 가장 맘에 드는군요. 육수도 제 입에는 잘 맞고요.
박 / 저도 '우래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정인면옥'은 밸런스가 가장 좋았습니다. '봉피양'은 2세대 냉면집들의 본보기 구실을 하고 있고요. '필동면옥'은 분명한 개성과 존재 의미가 있지요. '서경도락'은 내년쯤엔 굉장히 달라져있을 겁니다.
권 / '봉피양'은 안정된 맛이 좋고, 남녀노소 누구나 선호하는 '필동면옥'에 맘이 끌리네요. '우래옥'은 고풍스런 우아함이 좋습니다. '서경도락'은 부족한 듯하지만 나쁘지 않은 맛입니다.
[평가단] 김수진 / 눈꽃빙수 카페 'The Snow' 대표 박상현 / 맛칼럼리스트(취생몽사) 김진용 / 메밀 유통업체 '진화식품' 대표 권오진 / 계명문화대학교 호텔항공외식관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