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는 개최국의 사회·경제·문화적 요소가 모두 반영되는 자동차산업의 꽃이다. 차가 굴러다니는 곳이면 어디서든 모터쇼가 열린다. 단순히 현재 판매되는 차 몇대를 전시하는 것부터 전후방산업을 아우르며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초대형 이벤트도 있다. <머니S>가 자동차강국 일본에서 열린 ‘2017 도쿄모터쇼’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한다.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쿄모터쇼에서 세계 자동차시장의 흐름을 짚어보고 주요 출품차종과 함께 다양한 현장 분위기를 살폈다.<편집자주>
세계 자동차마니아의 눈과 귀가 일본 도쿄 빅사이트로 쏠렸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2017 도쿄모터쇼’에서 여러 일본자동차회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것. 시작 전부터 미국 빅3 자동차제조사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잡음이 있었고 국내업체는 발을 디딜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지역색이 강한 행사여서다.
올해로 45회째를 맞은 도쿄모터쇼의 분위기는 비가 내리고 쌀쌀했던 당시 날씨와 닮았다. 마치 일본과 세계 자동차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현재 자동차산업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100년의 변화보다 앞으로 10년의 변화가 더 심할 거란 예측도 쏟아진다. 그동안 힘차게 돌아가는 엔진처럼 지칠줄 모르고 세계의 제조업을 이끌었지만 ‘전기’라는 동력원의 변화를 마주하며 그 요란함이 점차 수그러드는 중이다.
대형 전시회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IT박람회에 자동차회사가 대거 참여해서 첨단기술을 선보이고 모터쇼에는 IT기업이 등장해 자동차관련 기술을 소개한다. 이런 광경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앞으로 자동차산업이 마주할 시대는 전통적인 제조업과 달리 융합과 혁신이 핵심 키워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며 서로 파트너 찾기에 혈안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모터쇼의 슬로건은 ‘자동차를 넘어’(Beyond the Motor)다. 자동차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 물론 자동차가 변하면 우리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행사를 통해 보여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터쇼의 또 다른 메시지는 ‘세계를, 지금부터 움직이다’다. 일본차회사들은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 중일까.
◆토요타자동차
시작부터 신선했다. 2년 전만 해도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직접 프레스 컨퍼런스에 나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회사의 핵심가치를 강조하며 토요타 차를 왜 구입해야 하는지 설득했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는 프랑스인인 디디에 르로이 토요타 총괄부사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무대에 오르며 “여러분들은 프랑스인인 내가 도쿄에서 토요타를 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이것이 토요타다”라며 “내가 이 자리에 선 것이 앞으로 토요타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제품보다 제품 이외의 가치에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우선 2020년을 목표로 친환경차 기반의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기술에 집중할 방침이다. 토요타는 이번 모터쇼를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자동차회사’라는 비전을 밝혔다. 모두를 위한 이동수단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불가능을 시작하라’는 글로벌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공식 파트너로서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새로운 모빌리티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디에 부사장에 따르면 토요타는 연결성을 늘리면서 AI의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 미국과 일본에 클라우드 서버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 도쿄올림픽에 맞춰 개발 중인 수소연료전지 콘셉트버스 ‘소라’와 덩치를 키워 활용성을 높인 ‘뉴 재팬택시’도 강조했다.
◆닛산자동차
닛산자동차는 ’더 많은 자율성, 더 많은 전기화와 더 많은 연결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변화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맡은 다니엘 스킬라치 총괄부사장이 가장 강조한 건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다. 주행, 힘, 연결성을 모두 통합한 개념으로 이를 통해 자동차와 운전자가 교감하고 전기차의 변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이를테면 이번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리프 니즈모’가 대표적 사례다. 전기차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닛산의 튜닝브랜드를 앞세운 것.
나아가 앞으로 모든 카테고리에서 전기차를 출시해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부스 디자인도 나선형 디자인 테마를 적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다는 의미를 담았다.
내년 9월 닛산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의 전기차 레이싱 대회인 ‘포뮬러-E 레이싱 챔피언십’에 도전한다. 일본 자동차브랜드 중 최초다.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를 확산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글로벌 플랫폼이라고 판단해서다.
스킬라치 부사장은 “닛산의 DNA는 모터스포츠에서의 오랜 성공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자동차의 혁신도 이끌었다”며 “포뮬러-E를 통해 이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혼다자동차
모터사이클, 자동차, 범용제품을 비롯해 비즈니스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품군을 생산하는 혼다는 하치고 다카히로 사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에 나섰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운전의 기쁨을 선사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개발하고 소개해왔다”면서 “이 열정은 우리가 EV 모델을 개발할 때도 똑같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혼다는 2030년까지 글로벌 자동차 판매의 3분의2를 전기자동차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혼다는 첨단 제조기술과 전자기술 등 신기술을 도입해 일본 내 생산역량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전환기를 맞은 시점에서 일본 내 투자를 늘려 내실을 다지고 세계시장에서 제품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내놓을 제품의 방향성은 사람과 친밀감을 높인 ‘파트너’다. 운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선호도를 학습하고 더 재미있게 주행하도록 여러 가지 선택을 제안하는 AI를 적용한다.
모터스포츠도 빼놓지 않았다. 혼다 팬을 위해 포뮬러원(F1)을 비롯한 여러 대회에 꾸준히 투자하며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것. 다카히로 사장은 “혼다는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며 우리 팬과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현가능한 기술을 구현하면서도 거창한 개념을 쉽게 정립하는 데 집중한 일본 3사. 이들은 전기동력화를 추구하면서 자율주행기술을 더해 미래 모빌리티를 대비한다. 또 모터스포츠로 기술력을 검증할 방침이다.
이번 모터쇼에서 이들이 제시한 비전은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시한 로드맵은 꽤 구체적이다. 2025~2030년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큰 전환점이 올 걸로 판단,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또 각 부스마다 가상현실(VR)장비를 갖추고 미래기술을 먼저 체험토록 했다.
이 같은 노력은 전시장에 별도로 마련된 ‘도쿄 커넥티드 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율주행시대 이후 자동차가 생활과 이어지는 사회를 표현하려 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달라진 시대를 대비하는 일본 3사의 노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2호(2017년 1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