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라는 과학기술인 단체가 있다. 필자도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SC의 ‘열린 정책 위원회’를 중심으로 헌법의 과학기술 관련 조항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현 헌법의 ‘제9장 경제’에 들어있는 제127조 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이 조항을 바꾸자는 노력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 과학자들이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헌법 조항에는 국가가 ‘왜’ 과학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적혀 있다. 바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현 헌법의 조항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에 구속시키고 있다.
지난번 소개한 핀치 연구를 기억하시는 지.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에게 “당신들의 연구가 어떻게 경제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이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여기서 독자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들의 잡종 핀치 연구가 앞으로 영원히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수십년간 핀치를 관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뉴턴이 중력법칙을 연구한 것은 300년 후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100년 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 연구도 우리가 매일 쓰는 자동차 내비게이터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경제발전이라는 시각으로 연구를 할지 말지를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결정했다면 우린 지금 훨씬 불편한 세상에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미래의 경제에 도움이 될 과학을 원한다면 경제발전이라는 구속조건을 없애는 편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과학자가 고를 수 있는 연구주제의 전체 집합을 생각하면 그중 ‘경제발전을 위한’이라는 구속조건이 붙은 주제의 집합은 전체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경제발전이라는 구속조건을 없애면 주제의 탐색공간은 더 커진다. 사실 과학자가 연구를 하는 이유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해’가 아닌 다른 ‘~을 위해’서가 아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5호(2018년 1월31일~2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