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간 담합을 적발하기 위한 유인책인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가 불공정 논란에 휘말렸다. 최근 담합 주도자는 이 제도를 이용해 처벌을 면하고 수동적으로 따랐던 업체만 막대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서다. 리니언시는 10여년 이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해묵은 과제다. 공익과 사회적 정의가 충돌하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위와 국회 차원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지만 마땅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범은 면죄부, 공범은 과징금

지난 2월13일 공정위는 조달청·국군재정관리단·방위사업청 등 14개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군납 마스크, 개인 보호구, 종이걸레 등의 구매 입찰에서 낙찰 예정사, 들러리사, 투찰 가격을 담합한 유한킴벌리와 그 대리점 23개사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6억500만원을 부과하고 이 중 유한킴벌리와 소속 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유한킴벌리 포함 24개 사업자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총 41건의 정부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전화 연락 등을 통해 담합했다. 41건의 입찰 총 계약금은 135억원이며 이 중 26건(75억원)이 실제 낙찰로 이어졌다. 유한킴벌리가 4건, 대리점들이 22건을 낙찰받았다. 대리점이 낙찰받은 건의 경우 모두 유한킴벌리로부터 해당 제품을 공급받아 수요처에 납품했다.


특히 대리점들은 외면할 수 없는 본사의 요청에 응한 것이 담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유한킴벌리가 자진신고한 사실조차 몰랐다. 유한킴벌리가 담합을 주도했고 상대적 을의 입장인 대리점은 수동적으로 가담한 셈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뉴스1DB

하지만 실제 처벌은 대리점만 받게 됐다. 유한킴벌리는 2014년 2월 자체 감사 결과 해당 행위가 담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내부 방침에 따라 즉시 공정위에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최초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100%와 형사처벌을 면한다는 리니언시 규정에 따라 과징금 2억1100만원과 직원 형사고발은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23개 대리점은 공정위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총 3억9400만원의 과징금을 납부하게 됐다. 이 사건을 심사한 한 공정위 위원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유한킴벌리 대리점주에게 “현행법상 구제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한킴벌리도 여론의 비난을 우려해 공정위 발표가 나오자마자 대리점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2014년 B2B사업부와 대리점의 입찰담합 행위 위법성 우려를 인식한 직후 해당 행위를 금지하도록 조치하고 내부 방침에 따라 즉시 공정위에 신고했다”며 “자진신고와 관련된 비밀유지 의무로 (대리점 등에)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법적 검토를 거쳐 과징금 대납을 포함해 대리점 손실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가장 먼저 자백한 기업에게는 과징금 전액을, 2순위로 자백한 기업에게 과징금의 50%를 감면해준다. 또 검찰고발까지 모두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선처 제도다. 하지만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지적사항으로 등장할 정도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2011년 노래방 반주기 제조·판매사인 금영과 TJ미디어는 노래방 반주기와 신곡가격 등을 올리는 담합 행위가 공정위에 포착되자 과징금을 줄일 목적으로 자수 순서를 정하는 또 다른 담합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담합은 시장경제를 교란하고 정부와 소비자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다. 하지만 내부고발이나 담합기업 중 일부의 배신을 유도하는 리니언시 제도가 없다면 적발이 어렵다. 더 큰 공익 실현을 위한 필요악인 셈이다.

◆담합 적발 위한 필요악

담합 주도자를 리니언시 혜택에서 제외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담합 사건 중 리니언시를 이용해 적발한 건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이후 주도자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주기로 변경한 후 리니언시를 통한 담합 적발 건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적발된 담합 사건 45건 중 27건(60%)이 리니언시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리니언시 담합 적발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2010년대 들어 국회에서 ▲담합 자진 신고자가 업계 1위인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경우 리니언시 대상에서 제외 ▲과징금 상한선은 매출액 대비 20%로 확대 ▲최초 자진신고자 과징금 감면액 50%로 축소 등 다양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모두 유야무야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리니언시 제도를 손보는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그때마다 다른 이슈와 관련된 법안에 밀려 제대로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총괄과 관계자는 “기업 담합을 적발해 카르텔 구조를 붕괴시킨다는 목적을 가진 리니언시 제도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현실적으로 담합 주도자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과 배신을 유도하는 리니언시의 특성 등을 감안하면 자진신고자에게 예측 가능한 균일한 혜택을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리니언시가 사회적 정의에 반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부고발과 자진신고 외에는 담합을 적발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익적 우위성을 따져 사회적 비용이 적은 쪽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카르텔 붕괴와 사회적 정의가 충돌하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할 묘안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9호(2018년 2월28일~3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